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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원 리더' 신동빈, 롯데 자이언츠 경기력 향상 지시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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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 대신 내실을 추구함)은 신격호(93)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신 총괄회장은 1980년대 롯데그룹이 생산하는 1만5000개 제품 가격을 모두 외운다고 자신할 정도로 신중하고 세밀한 경영을 했다.

그러나 지난달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통해 한·일 롯데의 '원(one) 리더'가 된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60) 회장의 스타일은 다르다. 승부처에서는 공격적으로 나선다. 1981년부터 8년 동안 노무라증권에서 금융업무를 한 그는 투자 결정이 빠르고 스케일이 크다.

롯데그룹 정책본부는 "신 회장이 롯데 자이언츠(야구단)의 경기력 향상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고 지난 31일 전했다. 이날 신동빈 회장의 육촌 형인 신동인(69) 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사임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여전히 구단주로 남아 있지만 실질적 오너는 신동빈 회장으로 정리됐다.

신 회장이 "자이언츠가 약한 불펜진 탓에 많은 역전패를 당했다. 우수 자원을 영입하라"고 지시한 건 그가 야구단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신 회장은 91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당시 오리온즈)의 구단 사장 대행에 취임한 뒤 2005년 구단주 대행에 올랐다. 야구를 잘 알고, 야구단을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2004년 신 회장은 메이저리그 출신 괴짜 감독인 바비 발렌타인을 영입하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시 발렌타인 감독의 연봉은 일본 최고 수준인 3억3000만엔(약 33억원)이었다. 화려한 경력과 팬 친화적인 성격을 갖춘 발렌타인 감독이 부임하자 2004년 마린스의 관중은 159만6000명(2003년 122만5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당시 신 회장은 2003년 56홈런으로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이승엽을 스카우트하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렸다. 2005년 일본시리즈 정상에 오른 마린스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6년 발렌타인 감독은 4년 총액 20억엔(약 197억원)의 초대형 계약에 성공했다.

마린스의 성공과 파격은 일본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다. 당시 일본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신 회장의 인지도 또한 함께 올랐다. 이후 마린스의 투자는 잠깐 주춤했다. 그러다 2010년 한국 대표팀 4번타자 김태균(33·한화)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신 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2011년 실무진이 외야수 오무라 사부로(39)를 트레이드하자 신 회장은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이자 팬으로서 이해할 수 없다"며 그해 겨울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사부로를 다시 사들였다. 일본 재계는 "신동빈 회장이 야구단을 통해 경영능력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마린스를 통해 입지를 다졌던 신 회장은 이번엔 자이언츠 혁신에 나설 것으로 많은 이들이 전망하고 있다. '형제의 난'으로 땅에 떨어진 롯데그룹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야구단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자이언츠는 신동인 전 구단주대행과 신동빈 회장 양측에 구단 사안을 보고하는 등 역량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 이창원 자이언츠 사장은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건 구단의 지향점이다. (신동빈) 회장님의 의중을 헤아려서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8위(54승64패·8월 31일 현재)에 머물러 있는 롯데는 이종운(49) 감독 체제를 다시 점검하는 한편 FA 선수 영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부산 출신인 SK 불펜투수 정우람(30)을 스카우트할 거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본 소프트뱅크와 계약이 1년 남은 프랜차이즈 스타 이대호(33)의 재영입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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