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은행원이 400억 횡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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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00억원의 공금을 횡령해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대부분 날린 30대 은행원이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금융감독원은 조흥은행 직원 김모(31)씨가 전산조작을 통한 계좌이체 수법으로 회사 공금 400억원을 빼돌린 사실을 14일 적발해 경찰에 김씨를 횡령 혐의로 고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김씨는 본점 자금결제실에 근무하면서 지난해 11월 23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중소기업 지원자금 등 정부정책자금을 거래하는 '기타 차입금' 계정에서 16차례에 걸쳐 한번에 30억~70억원씩을 빼냈다. 김씨는 범행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자금이체 관련 e-메일과 문서를 위조, 빼돌린 돈이 정상적으로 상환된 것처럼 조작했다. 김씨는 이 돈을 자신의 누이 두 명의 이름으로 개설된 E증권 계좌로 이체한 뒤 선물.옵션에 투자했다가 332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금감원은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개인의 증권 계좌에 은행의 대규모 자금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증권사의 제보에 따라 김씨의 범행 사실을 적발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조흥은행과 E증권에 금감원 검사반이 긴급 투입됐고, 김씨 누이들 명의의 예금 잔액 68억원에 대해서는 지급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금감원은 특히 은행 측이 이날까지 김씨의 범행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점을 중시, 내부 통제시스템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금결제권도 없는 실무자가 4개월여간 막대한 돈을 횡령하고도 버젓이 정상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흥은행 측은 "매달 말 '기타 차입금' 계정을 점검했지만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중소기업.에너지 등과 관련된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자금 종류가 워낙 많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9월 코오롱캐피탈의 472억원 횡령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나현철.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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