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칼럼

가이드북 덮어야 길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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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완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3학년

지난 여름방학 동안 수많은 대학생이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엔 해외여행 가이드북이 즐비하다. 가이드북에는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관광 명소와 맛집들이 엄선돼 있다. 현지에서 쓸 수 있는 쿠폰도 여러 개 들어 있다. 이러니 가이드북이 없으면 불안하다. 지난여름 인도를 여행한 나 역시 가이드북을 품에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는 어딜 가도 관광객으로 북적댔다. 그러나 가이드북이 소개한 관광지들은 진짜 인도라기보다는 관광객을 겨냥해 특화된 인도였다. 한국인·중국인·유럽인들로 가득했다. 여행 일정을 시작한 수도 델리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일행을 며칠 뒤 바라나시에서 다시 만났을 정도였다. 한국인이 워낙 많다 보니 내가 만난 인도 사람 상당수가 한국어를 구사했다.

  인도인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지만 내가 들어간 식당은 테이블마다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 있었다. “이게 아닌데” 싶어 가이드북에서 ‘숨은 명소’로 소개된 곳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마침내 여행 보름째 되던 날, 가이드북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보여주기용 인도가 아닌 ‘진짜 인도’를 보고 싶었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인도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달 보름가량 일정이 남아 있던 때였다. 막상 가이드북을 버리자 처음엔 막막하고 불안했다. 어디를 들렀다가 어디로 간다는 식의 대략적인 로드맵만 세우고 여행을 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길을 잃고 헤맨 끝에 금쪽같은 여비를 털어 릭샤(손수레)를 타야 했고, 밤늦게 찾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대에 물려 며칠을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의 속살을 봤다. 현지 문화도 배웠다. 가이드북을 덮으니 비로소 인도가 보였던 것이다.

 고민 없이 가이드북이 안내하는 길만 따라가기는 쉽다. 인도뿐 아니라 해외여행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우리 청년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가이드북이 맛집과 관광지를 찍어주듯 어른들은 우리에게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를 지정해준다. 합격과 입사를 쉽게 할 수 있는 요령도 알려준다. 어떤 스펙을 쌓고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는지 콕 찍어 귀띔해준다. 어른들의 이런 가르침엔 그만 한 이유가 있겠지만, 정말 그 길이 내 삶에 부합하는 길인지는 반드시 스스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인도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조바심에 허겁지겁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을 잊지 못한다. 노을이 마을 곳곳에 붉은색을 입혔고 그 위로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가이드북을 덮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나만의 인도, 진짜 인도였다.

김완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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