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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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언어로 가둔 뜨거운 열망
시 - 이수명‘최근에 나는’외 15편

최근에 나는

최근에 나는 최근 사람이다. 점점 더 최근이다. 최근에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 앞을 지나갔다. 어디서 오는 길이지요 묻는 사람은 최근에 본 사람이고 펄럭이는 플래카드 텅 빈 플래카드에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펄럭이는 깃발 아래 펄럭이는 그림자를 최근에 본 사람이고 그 펄럭이는 것이 신기하게도 구겨지지 않고 계속 펄럭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구겨지지 않는 사람들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혹은 구겨진 신체를 계속 펴는 사람들이었는지도 알 수는 없었는데 아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만 펄럭이는 것이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으려 펼럭이는 것이 가로지르고 있는 최근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었다. 수시로 아침이 오려 하는 거리를 신체를 펴고 걸어가는 것이었다. 최근은 편안한 것이었다. 수시로 최근의 사실들이 모여들었다. 조금 더 최근의 일이에요 말하는 사람을 거기서 나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을 매개로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는 시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수명(50·사진)의 시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 시인은 묘사하는 문장 대신에 암시성이 상당한 싯구를 활용하는 데 능하며, 습관적인 인식과 의미에 구속된 문장의 허구성을 선명하게 들추는 데도 탁월하다.

 ‘최근’은 따지고보면 모호한 말이다. 이 말에는 시간을 공간화하는 감각이 들어있는데 우리가 체험하는 시간성은 공간적 지각과 다르다. 꽤 오래된 과거지만 현재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는 법. 현재의 특별한 사건은 잠재적인 과거를 깨워 돌연 우리를 멈춰서게 한다. 이 시의 ‘플래카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은폐된 진실을 요구하거나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하고, ‘펄럭이는 깃발 아래’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투쟁을 떠올리게도 한다.

 시인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플래카드를 제시함으로써 하나의 요구와 사실로 수렴되지 않는, 더 다양하고 더 강력한 무언가를 까발리고 요청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아닐까. ‘펄럭이다’ ‘구겨지지 않다’ ‘쓰여 있지 않다’라는 서술이 반복되는 과정에 형성된 ‘대항적’ 분위기와 함께, ‘최근’이란 말의 반복이 불러온 묘한 시간적 혼돈은 마치 주술처럼 우리를 시간의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새날을 부르는 순수한 움직임이 있고, 불변의 사실을 변화시키려는 뜨거운 만남이 있다.

 이수명은 견고한 언어의 감옥을 깨부수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 시인은 말이 쉽게 가둘 수 없는 삶의 열망과 시간의 움직임에 예민하기도 해서, 뜨거운 열망을 차가운 언어의 제어 속에 구현하고 시간의 두터운 깊이를 속도감 있게 흐르는 언어의 표면에 새겨넣는 스타일을 발명했다. 한국어와 한국시에 이수명은 축복이다. 미처 몰랐던 역량을 이수명의 시가 자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송종원 (문학평론가)

◆이수명=1965년 서울 출생. 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등. 시론집 『횡단』. 현대시작품상·노작문학상 수상.

기억 없는 삶, 저항일까 투항일까
소설 - 정소현 ‘어제의 일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작가 정소현(40·사진)씨가 ‘어제의 일들’ 말미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뜻밖에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함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 처절하다. 어린 소녀들의 있을 법한 오해와 악의들이 또 다른 한 소녀의 삶을 송두리째 유린하는 비수가 되고 말았다. 루머로 고통 받다 자살을 기도했던 상현은 방금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장애를 짊어진 채 볕도 들지 않는 주차장에서 나날의 삶을 버틴다. 시시각각으로 소멸 중인 ‘현재’야말로 그녀의 전 생애인 것처럼.

 작품은 과거가 없는 삶이 저주인지 축복인지를 가리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죄책감을 숨긴 옛 친구들의 등장을 계기로 과거의 사건을 복기하면서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차마 다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그것들은 명백히 지나가버렸고, 기세등등한 위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살아 있어 다행이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모욕당한 과거에 저항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럴 리 없다. 활은 있되 과녁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투항이나 순응일까. 그 또한 아닐 것이다. 고개 숙인 자들은 있지만 아무도 군림하지 않는다. 작품은 오히려 저항과 순응의 양쪽 손을 동시에 놓음으로써 모종의 운명애(amor pati)에 이른다. 기억과 망각, 그리고 미궁의 현실이 야기하는 불안의 능란한 수집가였던 이 작가에게 새로운 고비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성숙의 계기 없이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없을 테니까. 이런 작가가 있어 다행이다.

강경석 (문학평론가)

◆정소현=1975년 서울 출생.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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