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기싸움의 구조조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십 년 전, 대동강 고려호텔에서 바라본 평양 시가지는 어두웠다. 흑백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국산품 애용이 주제였다. 나를 담당한 국가보위부 젊은 청년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는데, 마일드세븐 담배를 즐겨 피웠다. 다음 날 내가 작심하고 물었다. “그거 외제인데….” 그랬더니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일 없시요!” ‘주체경제학’엔 그런 게 없다고 했다. 평양 주민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닭을 키웠고, 쌀가게엔 곡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북한도 이제 ‘외아들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강성대국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라는 당국의 명령에 법학부를 법률대학으로 승격하고, 경제학부에서 재정대학을 분리했다. 우리처럼 법과 돈이 중요해진 것이다. 융복합학문을 ‘경계과학’으로 명명하고 학제를 대폭 변경했다는 게 광복 70주년 기념 3개 대학(김일성대, 옌볜대, 서울대) 학술회의에 다녀온 박명규 교수의 전언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을 10년째 이끌고 있는 박명규 원장의 표정은 상기되었다. “교육을 비롯해 시장 상황이 변하고 있다!”(중앙일보 21일자 박명규 교수 인터뷰 기사)

목함지뢰 도발에 서울과 평양의 기싸움이 고조되던 와중이었다. 박 교수가 그들과 아쉽게 작별하고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 고사포가 터졌다. 그러자 ‘단호한 대응’을 입증하듯 자주포 29발이 민통선 너머 북녘땅에 작렬했다.

 반제(反帝) 무력의 전위인 고사포와 반공(反共)무력의 상징인 자주포가 잡초 우거진 비무장지대 상공을 시위하는 이 현실은 20세기적이다.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 전반기를 ‘파국의 시대’로 불렀다. 12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한국전쟁을 ‘문명의 이름’으로 치렀으니 말이다. 문명의 엔진을 결딴낸 주범은 이념이었다. ‘굶주린 인민을 먹여살린다’는 이념분화의 갈림길이 대량학살이었다. 그런데 ‘공화국’(대한민국)에 기어이 인민을 붙여 ‘인민공화국’ 간판을 내건 북한은 ‘인민을 먹여살리는’ 20세기 이념에서 남한에 졌다. 북한은 이념에 갇힌 ‘가두리 양식장’이 됐고, 남한은 오대양 푸른 바다목장으로 진출하는 기항지가 됐다. 지난주 위험수위를 넘은 기싸움은 20세기를 파국으로 몰고 간 바로 그 어리석음의 씨앗, 이미 유통기한이 소멸된 불임(不姙) 이데올로기임에도 여기 오직 한반도에서 재현되는 장면을 후대 역사가들은 어떻게 쓸까. ‘극단의 시대’를 못 잊는 한반도?

 지난달, 쿠바 아바나에 미국 성조기가 게양됨으로써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시대는 끝났다. 정부 청사에 게양된 미국 국기를 바라보는 늙은 혁명가 카스트로의 마음엔 만감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50년대 말에 이미 선언한 ‘이데올로기 종언’이 쿠바에서조차 조용히 실행되는 이 ‘화해의 시대’에 고사포와 자주포의 위협 발사,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에다 삐라 살포와 확성기 시비 같은 구시대의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한반도는 도대체 ‘야만의 시대’로 귀환하고 싶어 안달하는 듯 보인다. 우리 국방장관이 확성기를 계속 틀겠다는 것이나, 저쪽 장성이 총력전 엄포를 놓는 것이나 다 우스꽝스러운 무기놀이인데 인류 역사에 최첨단 정보화시대를 개척하는 한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마치 고구려 고적 답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재래식 통일 마인드를 전면 구조조정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어찌 대학과 기업에만 적용되랴.

 기싸움의 구조조정, 남북 주민을 위한다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좀 더 고차원의 마인드로 바꿀 수는 없을까? 부자와 빈자의 싸움, 열린 자와 닫힌 자의 싸움엔 이데올로기가 소용없다. 부자가 양보하고, 열린 자가 포용하는 게 제일이다. ‘더 당할 수 없다’는 게 남한 주민의 일반적 정서이겠지만, 강성대국에 무력전에만 매진하는 저 돌연변이 북한 정권을 살살 구슬리는 일에 우리가 얼마나 인내심을 보였는지를 이 시점에서 돌아볼 필요는 있다. 박명규 교수가 말한다. “5·24 조치로 남북이 막혀 있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인프라 투자를 하고, 쌀을 지원하고, 문화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8·15 경축사는 미진했다. 광복 70주년, 우리의 태도와 마인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북한은 돌덩이처럼 꿈쩍 않는데 바뀌라는 요구를 되풀이 강조하는 대북 메시지는 재래식이었다. 개혁개방과 이산가족 상봉은 흘러간 옛 노래였다. 북한의 답은 고사포 도발, 여기에 남한은 ‘단호한 대응’으로 응답했다. 경축사 의미는 그걸로 퇴색됐다. 청와대가 주문하는 ‘단호한 대처’, 국방부가 재삼 확인한 ‘원점 타격’이 이리도 공허한데, 대통령이 전망한 ‘광복 100주년’의 민족적 환희를 실현해 줄 전향적 개념은 어디에 있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