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속 56㎞로 꽝~ 똑같이 부서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출생지만 다른 쏘나타 두 대가 시속 56㎞로 충돌하는 장면을 600여 명이 지켜봤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22일 인천 송도 업무지구의 현대자동차 도심 서킷. 600여 명 관객이 숨 죽인 채 마주 선 쏘나타 두 대를 응시했다. ‘카운트 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두 쏘나타가 날카로운 엔진음을 내며 상대를 향해 질주했다. 시속 56㎞로 달린 두 차 정면충돌하는 순간 앞 범퍼가 산산조각났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쏘나타는 하얀 연기에 휩싸였다. 두 차의 보닛은 판박이처럼 비슷한 모양으로 반쯤 구겨졌다. 안전선 뒤에서 숨죽이던 관중은 까치발을 들고 연신 카메라를 눌렀다.

 이날 행사는 ‘쏘나타 30주년’을 맞아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세계 최초의 ‘카투카(Car to Car)’ 공개 충돌 시연회. ‘수출용이나 미국 등지에서 만든 차와는 달리 내수용 차는 깡통차’란 비판을 의식한 행사다. 그래서 실험에는 ‘출생지’만 다른 쏘나타 2.0 터보 모델 두 대를 동원했다. 각각 충남 아산과 미국 앨라바마 공장에서 태어났다. 두 차량은 외관은 물론 파워트레인(동력전달 장치)과 대부분의 안전·편의사양도 같았다. 미국 법규에 따라 미국산 쏘나타의 조수석 에어백에만 탑승자 여부 감지 센서가 들어있는 점이 달랐다. 200여m 거리를 두고 마주선 두 쌍둥이는 각각 운전·조수석에 두 개의 ‘더미(인체 모형)’를 태우고 시속 56㎞로 달렸다. 땅에 심은 센서를 통해 자율주행 방식으로 달렸다.

 양측에서 100m씩 달려와 중간 지점에서 부딪힌 충돌 실험의 결과는 ‘무승부’였다. 두 차량의 보닛과 엔진룸은 많이 손상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똑같은 모양으로 파손돼 같은 크기의 충격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충돌 순간 두 차의 운전석·조수석의 에어백과 무릎 에어백 역시 모두 정상적으로 터졌다. 실험을 지켜본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과) 교수는 “승객의 안전과 직결된 A필러(차량 앞부분)가 두 차량 모두 밀리지 않아 두 차의 안전성이 함께 입증됐다”고 말했다. 충돌 이후 탈출이 가능하도록 운전·조수석의 문도 정상적으로 열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내수·수출용 모두 더미의 ‘부위별 상해 정도’에 따라 평가한 결과에서도 다같이 ‘그린 색상’(우수)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보통 충돌 실험은 연구소 같은 통제된 환경에서 진행한다. 이후 결과가 좋으면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날처럼 변수가 많은 야외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방식의 실험은 위험 부담이 커서 국내외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현대차는 ‘내수용 역차별’ 논란에 적극 해명하기 위해 행사를 진행했다. 현대차가 설문 조사한 결과 ‘내수용은 대충 만들고 해외로 수출하는 차는 더 잘 만든다’고 생각한 고객이 81%에 달했다.

 곽진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부사장)은 “그 같은 지적에 대해 뼈 아픈 고민을 한다는 걸 진정성 있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위험 부담이 큰 실험이지만 고객과 가까이 소통하고 싶어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시험 차량을 고를 때도 일반인들에게 맡겨 공정성을 높였다. 아산 공장 쏘나타의 경우 자동차 전문 블로거 이대환씨가 선택했고, 앨라바마 공장 쏘나타는 김필수 교수가 현지를 직접 방문해 선정했다.

 이날 실험엔 10억원이 들었다. 관객도 호평하는 분위기였다. 딸·부인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윤한주(39)씨는 “(수출용이 더 좋다는) 속설이 자꾸 들리다 보니 솔직히 의심쩍었다”면서도 “결과도 결과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피드백하는 자리를 마련한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곽진 부사장은 “실험 결과와 상관없이 꾸준히 고객 불만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