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선 실패도 자산 … 창업자 연대보증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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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저성장·취업난을 뚫을 해법으로 ‘창업 국가’를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창업은 ‘골목 개업(開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지난달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어느 분야의 창업에 관심이 있으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0.5%는 ‘요식업’을 꼽았다. ‘요식업을 제외한 창업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60%가 ‘없다’고 답했다. 2013년(각각 44.9%, 67.9%)에 비해 조금 나아졌으나 그간 정부의 창업 활성화 대책을 감안하면 기대를 밑도는 성과다.

  이는 골목을 벗어나 ‘개업’이 아닌 ‘창업(創業)’으로 가는 길이 아직 좁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창업을 하지 않는 첫째 이유로 ‘창업에 필요한 자본이 없기 때문’(52.8%)이라고 답했다. 2년 전(47.4%)에 비해 되레 늘어난 수치다. ‘ 창업하는 데 정부의 제도나 지원이 창업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도 33.4%로 2년 전에 비해 1%포인트 줄었다. 결국 기술·자금에 한계가 있다 보니 비교적 창업이 쉬운 요식업에 눈을 돌리고, 오래 못 가 폐업하다 보니 골목 간판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실정이다.

 창업 전문가들은 준비되지 않은 ‘나홀로’ 생계형 창업에서, 이젠 준비된 아이디어·기술 기반의 창업을 북돋는 식으로 창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남정민 단국대 창업교육센터장은 “기업가 정신과 아이디어·투자가 맞물린 ‘창조적 창업’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 고 조언했다.

 창업 현장에서는 ‘창업자 연대 보증’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업진흥원에 따르면 이 제도가 없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의 경우 창업주의 평균 실패 횟수는 2.8회로 한국(1.3회)의 배를 넘는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해외에선 실패 경험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여기는 반면, 국내에선 한 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낙인찍힌다”며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창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돈을 빌려서 기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투자→창업→성장→자금 회수→투자 혹은 재창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열린다. 기술의 속도를 쫓지 못하는 각종 규제를 없애고, 예비 창업자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 몰려 있는 창업 지원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신용한 위원장은 “치킨·커피·신발 같은 ‘생계형 창업’에도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어 준다면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자 스스로도 의욕만 앞선 ‘묻지마식 창업’은 피해야 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각종 창업지원센터를 활용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창업 아이템 선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특별취재팀=심재우(팀장)·구희령·손해용·박수련·이소아·이현택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강정현 기자, 정수경 인턴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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