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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실탄 1조원 … 애미·매미 300명 피 말리는 머니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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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 있는 S트레뉴의 외부 모습. 증권업계 관계자는 “S트레뉴 등에 둥지를 튼 개인투자자들은 1인 기업”이라며 “여의도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1인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여의도공원 앞엔 X자 모양의 건물이 있다. 36층 높이의 고급 오피스텔 ‘S트레뉴’다. 그런데 이 빌딩은 평범한 오피스텔이 아니다. 300여 명의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S트레뉴의 개미들이 굴리는 자금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웬만한 운용사를 능가하는 이들의 자금력 때문에 ‘S트레뉴 투자자문’ ‘S트레뉴 펀드’로도 불린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S트레뉴에 있는 투자자들의 자금이 2조원을 넘는다는 소문도 있다”며 “(자금을) 트래킹할 방법이 없어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귀띔했다.

 그래서인지 S트레뉴는 개미들에게 ‘성지(聖地)’로 불린다. 이곳에서 한 건 하면 큰돈을 벌어 수억원짜리 수퍼카를 몰고 다닐 수 있다는 믿음도 나온다. S트레뉴는 과연 엘도라도(전설 속 황금 도시)일까.

 지난달 말 S트레뉴를 찾아갔다. 국제금융로에서 165m 높이의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리로 된 건물 외벽이 햇빛에 반사돼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외관과 달리 내부는 평범했다. 주차장을 가득 채웠다는 수퍼카는 찾아볼 수 없었다. S트레뉴에 둥지를 틀고 있거나 틀었던 개인투자자들을 만났다.

 S트레뉴 개미들은 ‘애미(애널리스트 출신 개미)’나 ‘매미(펀드매니저 출신 개미)’를 포함한 증권업계 출신들이 많다. 2013년 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어진 증권사 구조조정 때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나왔다. 그 무렵 증권사 퇴직자는 5000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20~50%가 애미와 매미 등으로 탈바꿈해 여의도 일대 오피스텔로 모여들었다.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억원대의 퇴직금이 종잣돈이었다.

 이들은 여러 명이 사무실 하나를 빌려 ‘부띠끄’라는 비공식 투자자문사를 만들거나 기존 투자자문사에 합류했다. 부띠끄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돈을 굴리는데, 공동 투자를 하거나 전주(錢主)를 대신해 투자하고 보수를 받는 등 형태가 다양하다. 개미들의 서식처가 된 부띠끄는 S트레뉴를 비롯한 자이·포스코더샵·트럼프월드 등 여의도 일대 고급 오피스텔에 몰렸다. 여의도의 부동산 관계자는 “여의도 내 일반 빌딩 공실률은 10% 안팎인데 S트레뉴는 공실을 찾기 힘들다”며 “입주 문의가 꾸준하다”고 했다. S트레뉴의 임대료는 50평형을 기준으로 관리비 포함 월 500만원 선이다. 비싼 임대료지만 개인투자자가 선호하는 이유는 입지 조건 때문이다. 증권가의 정보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여의도 중심인 데다 지하철 여의도역이 바로 앞에 있다.

 매미 A씨(36)는 “점심 약속이나 정보 교류 모임이 대부분 여의도에서 이뤄져 S트레뉴를 거점으로 하면 움직이기 편하다”며 “또 투자자들은 대부분 강남에 사는데 9호선을 타면 여의도역까지 한 번에 출퇴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을 많이 벌어도 수퍼카를 타지도, 굳이 운전하지도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며 “남들이 몰라주길 바란다.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나면 세금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S트레뉴의 내부 구조도 데이트레이딩(초단타 거래)에 최적화돼 있다. 천장이 높고 전체가 트여서 컴퓨터를 여러 대 놓아도 여유 공간이 있다. 보통 하나의 사무실을 4~5명이 함께 사용한다. 이들은 세계적인 금융정보 채널인 블룸버그 터미널과 다우존스 팍티바 등을 공동 구독한다. 월세와 관리비 등은 n분의 1로 나눠 내 비용 부담도 최소화한다. 이곳의 개인투자자들은 사무실만 같이 쓰지 투자는 따로 한다. 시장을 보는 관점과 투자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 상황에 따라 같은 사무실 안에서 희비가 교차하는 일도 잦다. 크게 따는 사람을 보며 희망을 이어 가고, 잃는 사람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애미 B씨(42)는 “우리는 대박을 꿈꾸는 개인사업자다. 월세 등 지출 비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트레이딩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보니 사무실 식구들과 동질감을 느낀다. 같이 일하는 이유는 정보 공유뿐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위로가 필요해서”라고 했다. 그는 또 “다루는 돈의 볼륨이 커 월급쟁이 친구들과 얘기하면 괴리감이 들어 자연히 멀어진다”며 “다른 개인투자자들과 술 마시고 시장을 얘기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게 함께 일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S트레뉴의 일과는 단조롭다. 보통 오전 8시쯤 출근해 전날 미국 증시 상황 등을 점검하고 사무실 식구들과 정보 공유 회의를 연다. 장이 시작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15분까지는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는다. 점심은 보통 샌드위치나 김밥, 라면으로 때운다. 그마저도 거르기 일쑤다. 짬이 나면 여의도 63빌딩 등지서 열리는 기업설명회(IR)에 참석해 공짜 점심을 먹는다. 운동은 주로 등산을 선호한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S트레뉴의 개인투자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불면증은 기본이고 이명(귀울림)과 악몽을 달고 다닌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없다. 자면서도 매매하는 꿈을 꾸다 잇몸을 깨물어 피가 날 정도다.”(A씨), “사실 기관에서 딜을 할 땐 돈을 까먹어도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내 돈이 아니니까 잃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여기선 내 돈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직장에서 상사한테 욕먹는 스트레스보다 몇 배 더 심하다. 내 밥줄이고 생존이니까.”(B씨)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증시 활황이 이어지며 S트레뉴에서 대박 소식이 줄을 이었다. 화장품·모바일 게임·바이오 종목 투자로 돈을 벌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돌연 사표를 내고 애미로 전업한 뒤 화장품 마스크팩 중소기업에 4억원을 투자해 80억원을 벌었다. 이런 성공담은 많은 사람을 솔깃하게 만든다. 개인투자자들은 주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로 돈을 마련해 S트레뉴로 모여든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애미 C씨(46)는 “S트레뉴에서 돈을 벌었다는 사람 상당수는 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증시 급등락을 지켜봤던 40~50대 투자자”라며 “그들에게 2008년 금융위기는 기회였다. 다른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큰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A씨는 “개인투자자 100명 중 성공한 사람은 10명도 안 된다. 이 바닥에선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이 더 많다”며 “선물 투자로 1000억원을 벌었던 사람의 계좌가 불과 하루 만에 1500만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박 신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B씨는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뱉었다. “여의도는 ‘고담시티(탐욕과 범죄의 가상 도시)’와 같아요. 총과 대포만 없을 뿐이지 매일 전쟁터예요.” 그는 담배꽁초를 짓밟고는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S트레뉴 말이다.

글=곽재민·김영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8000만원으로 1300억 수익, 개미의 전설 ‘압구정 미꾸라지’

개미는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를 뜻하는 은어다. 크기(운용 규모)는 작지만 숫자가 많고, (테마를 따라) 줄줄이 몰리는 경향이 개미와 비슷해서다. 주식시장에서 개미의 득세는 주가 하락 신호라고 한다. 주가가 오를 만큼 오르고 나서야 개미들이 주식을 사들이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미들은 대박을 좇지만 수익률은 꽝이라는 오명이 있다. 정보 접근능력이 떨어지고 인기 종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다 갈팡질팡하는 투자 성향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친 개미들이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들을 ‘수퍼 개미’로 모신다. ‘압구정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울산 문어’ ‘전주투신’ 등이다.

 ‘압구정 미꾸라지’는 1998년 서울은행 주식운용부를 그만두고 개인투자자로 나선 윤강로씨다. 잘나가던 은행원이었던 그는 15년 동안 일하며 모은 종잣돈 8000만원을 갖고 선물 시장에 뛰어들어 한때 13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선물 시장의 위험을 잘 피해 다닌다고 해 사람들은 그에게 미꾸라지라는 애칭을 붙였다.

 ‘목포 세발낙지’는 대신증권 목포지점 영업부장을 지낸 장기철씨다. 그는 윤씨와 함께 국내 선물 시장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이들은 2000년 선물 시장이 걸음마 단계일 때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들 때문에 선물 시장의 투기성 단기거래(스펙)가 촉발됐다. ‘울산 문어’와 ‘전주투신’은 각각 울산의 개인투자자, 전주의 대형마트 경리직원 출신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의 대박 신화는 지속되지 못했다. 엄청난 투자 손실을 본 것이다. 윤강로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돈이란 게 벌기는 어려워도 잃는 것은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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