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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왜 의회확대가 필수적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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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 정치학

좋은 나라는 제도를 통하여 시민의사가 국가권력과 정책에 비례적으로 반영되는 국가를 말한다. 모든 시민의 뜻을 ‘직접’ 반영하는 제도가 불가능한 오늘날, 의회민주주의가 현대정치의 대종(大宗)인 까닭이다. 실제 현재의 선진민주복지국가들은 거의 전부 의회민주국가들이다. 의회국가의 건설 없이 좋은 나라는 불가능하다. 그들은 선진국이기 때문에 의회민주주의를 한 것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를 하였기 때문에 선진국이 된 것이다.

필자는 의회규모와 권한의 확대를 주장해왔다.[중앙시평 2012년 2월 9일자 참조] 한국의 의회규모는, 5.16쿠데타가 파괴한 건국헌법 수준에 맞추더라도 500명에 달해야한다. OECD의 전체, 유럽국가, 단원제 국가의 평균에 맞추려면 각각 510명, 997명, 802명에 달해야한다.

의회권한 역시 크게 강화되어야한다. 한국은 정책결정권(헌법 제66조4항,제89조), 예산편성권(제54조①②항,57조), 인사권(제78조,86조,87조,89조,94조), 감사권(제97조)이 모두 대통령·행정부에 있는 권력의 초(超)집중 관료국가로서 민주공화국의 근본원리와 충돌한다. 주권재민·민의반영·권력분립은 정책결정·예산·인사·감사와 같은 ‘적극적 권한’의 일부를 의회가 가질 때 실현가능하나, 한국은 비판·청문·계수조정·국정조사와 같은 ‘소극적 권한’만 갖고 있다.

의회규모와 권한을 확대해야할 핵심이유는, 그것이 사회문제해결 및 갈등해소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상세통계를 보면 민주국가에서 의회규모가 클수록 사회갈등은 줄어든다. 갈등이 의회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사회갈등지수가 낮은 상위 15개 안정국가=평안국가의 의회규모와 권한은 막강하다. 이들 중 한국보다 의원 1인당 인구가 많은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이들 평균에 맞는 한국의 국회의원 숫자는 1020명이다. 한국은 OECD 2위에 해당하는 최고 갈등국가로서 갈등비용은 연간 80조-240조에 달한다. 갈등완화와 국가발전을 위해 의회확대는 필수적이다.

의회의 비효율성? 의회는 정부의 어느 부분보다 효율적이다. 22조가 투입되고 앞으로도 막대한 예산이 낭비될 4대강사업을 비롯해 대통령과 행정부의 자원외교, 방산비리를 보고도 의회의 비효율성을 말하는가? 관료국가를 넘어 의회국가로 가지 않는 한 선진민주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 의회예산은 국가예산의 0.2%에 불과하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방대한 권한·규모·예산·낭비에 비하면, “300명, 0.2% 예산, 소극적 권한”밖에 없는 의회는 훨씬 효율적이다. 정치비용은 세금을 국민을 위해 사용케 할 최소규모의 가장 효율적인 감시수단이다.

민주주의는 선출직의 국가주도와 비선출직에 대한 견제만큼 발전한다. 문제는 오늘의 심각한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를 딛고 어떻게 의회확대를 위한 국민동의를 얻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87년체제는 기업·관료·검찰·정보기구·언론·시민단체가 연합한 강력한 반(反)의회·반(反)정치 담론의 시대였다. 실제의 국가실패·정책실패·경제실패의 핵심책임은 대통령과 정부·관료·기업에게 있음에도 거꾸로 ‘소극적 권한’만 가진 의회가 혐오대상이 된 것이다. 이 왜곡된 정치증오는 국가발전 지체와 민주주의후퇴와 국민 삶의 피폐화라는, 국가와 국민의 피해로 귀결되었다. 이제 국회는 세계 최고수준의 세비[1인당 GDP 대비 5.5배]를 절반 이상 삭감하는 특권철폐를 솔선하여, 정치혐오극복과 의회국가실현의 장애를 돌파해야한다. 상시개회와 전문성 제고, 절대청렴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들의 인식전환 역시 필수적이다. 왜곡과 진영논리를 넘어 정녕 차분하게 묻자. 무엇이 과연 나와 나라를 위한 합리적 제도인가를. 의회국가 건설에 길이 있다. 한 세대 후에 실현된, 조국을 위한 막스 베버의 선견지명을 우린 당대에 실현해보자.:“독일에서 국가의 미래질서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의회로 하여금 통치를 담당할 능력을 갖게 만드는가?’에 놓여져야 한다. 다른 모든 질문은 단지 오류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이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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