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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이어도 해양기상센터에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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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긴긴 세윌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어도는 죽은 뒤에나 갈수있는 ‘피안의 섬’이요 ‘환상의 섬’이다.

그러나 이제 바다 밑에 숨어 있던 이어도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양수산부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를 세워 11일 경기도 안산의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백49㎞ 지점의 공해상에 위치한 이어도 과학기지를 가봤다. (편집자)

지난 2일 제주해양경찰서 특수구조단 신항섭 단장이 조종하는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를 타고 제주공항으로부터 1시간쯤 이동하자 망망대해 한가운데 헬기 이.착륙장을 갖춘 해상구조물이 나타났다.

1995년부터 공사비 1백78억원을 포함한 2백12억원을 들인 결과 8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인공섬이다. 과학기지는 물 속에 잠겨 있는 이어도에 철구조물을 세워 만들었다.

이어도는 수심 4.6m 아래 숨어있는 바위섬. 과학기지는 이어도 밑둥 부분의 해저 평지(수심 40m)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어도 정상 주변의 물흐름은 약간의 소용돌이와 함께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해류가 바다 밑 바위섬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 옛날 남편이 타고 있는 고기잡이 배를 수도 없이 집어삼켜 제주 여인들이 죽은 뒤에나 가는 섬으로 믿게 만든 실체였다.

헬기에서 바라본 모습과 달리 실제 착륙 이후에 밟아본 과학기지는 웅장했다. 높이는 수면으로부터 36m 정도로 15층 건물과 맞먹었고 연면적은 4백여평에 달했다.

헬기 이.착륙장 바로 옆 옥상은 최신기종의 해양.기상 관측장비(44종 1백8점)로 채워져 있다. 이어도 과학기지의 중요성은 바로 주요 태풍의 진로 상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약 40%가 이곳을 통과한다.

이어도를 지난 태풍은 약 10시간 뒤 남해안에 도달한다. 이어도에서 미리 측정된 태풍의 세기와 강우량에 대한 정보는 육지에서 태풍에 대비하는 데 사용된다.

평상시에도 각종 해양.기상 정보가 모인다. 파고는 물론 해류의 세기와 방향, 수심별 수온 등이 실시간으로 모여 무궁화 위성을 통해 해양연구소로 곧바로 전송된다.

애초부터 무인기지로 사용한다는 방침이어서 모든 정보가 10분마다 전자동으로 수집되고 송신된다. 이날 유속은 초당 0.45m였고 파고는 0.44m로 잔잔한 편이었다.

87년부터 수차례 격랑을 헤치며 이어도 현장을 답사한 해양연 이동영 책임연구원은 "이 기지는 동북아 해양관측시스템의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동북아 해양관측시스템은 세계해양과학위원회(IOC)의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전지구 해양관측시스템(GOOS)의 지역 프로그램. 기상과 관련한 전지구 관측시스템은 이미 60년대에 갖췄는데 해양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동북아 지역 프로그램을 맡고있는 李책임연구원은 "서해와 동해에도 해양관측용 부표를 띄워 중국.일본 등과 해양공동연구를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기지는 앞으로 중국.일본과 배타적경제수역(EEZ).대륙붕 경계를 긋는 협상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과학기지의 구축으로 해양영역의 확대와 배타적 권리 주장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설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이 과학기지 구축을 두고 지난해를 포함해 두차례 이의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우리 측은 이어도 주변이 거리면에서 중국 동도(2백47㎞), 일본 조도(2백76㎞)보다 마라도(1백49㎞)에 가까워 경계 획정시 우리쪽에 포함되는 수역임을 주장해왔다.

이곳은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움직인다. 옥상에 만들어진 태양광 집광판을 통해 18㎾를 만들어낼 수 있고 풍력으로 7.5㎾ 발전이 가능하다. 연구원이 잠시 거주한다거나 비상시 전원이 필요할 경우 85㎾급 디젤발전기 2대가 작동된다.

옥상 바로 밑층은 연구원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이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물론 8명이 잠잘 수 있는 침실과 주방이 있고 위성을 통해 TV시청도 가능하다. 전화 등 음성통신은 상업용 위성 글로벌스타를 사용할 수 있다.

구조물 안전에도 많은 신경을 쏟았다. 지난 1백년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한 태풍의 파고(18.24m, 98년 셀마)와 풍속(초속 58.3m, 2000년 프라피룬)을 가정해 튼튼하게 지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도난. 두달간 과학기지에 머무른 현대중공업 하명호씨는 "10척 이상의 중국어선이 항상 조업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혹시라도 기지 위로 올라와 고가의 장비를 훔쳐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감시카메라와 초음파 센서 등 감시시스템이 가동, 사람이 기지에 접근시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경고방송이 흘러나온다. 보트 접안시설에서 기지로 올라오는 길목에 자동사다리를 설치, 무인운영시 위층으로 붙여 쉽게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다.

기지 건설 초기 전기충격기를 설치하려 했으나 과학기지의 순수한 이미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배제됐다. 기지구축을 진두지휘해온 심재설 책임연구원은 "갈고리를 걸어 타고 올라오면 소용없는 일"이라며 "각종 장비와 시설물에 대한 보험가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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