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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참사 필리핀서 노래로 하나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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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23일 필리핀 타클로반 태풍 피해현장을 방문한 소리꾼 장사익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한국유니세프]

소리꾼 장사익(66)은 가진 재주가 노래뿐이다. 마흔다섯 살에 직장생활 집어치우고 태평소를 손에 든 이래, 그는 목청 하나로 세인을 울리고 웃겼다. 20여 년간 서민의 애환을 어루만진 덕에 ‘민생가수’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 본 민생은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참혹 그 자체였다. 지난해 11월 수퍼태풍 ‘하이옌’의 직격탄을 맞은 필리핀 타클로반. 쪽방촌에서 엉켜 지내는 아이들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보기만 하여도 울렁 생각만 하여도 울렁 수줍은 열아홉 살~”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이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대로 노래 불렀다”고 했다. 필리핀 아이들이 한국말 가사를 알아들을 리 없다. 그런데 어깨들이 들썩였다. 노래가 끝나자 한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장사익이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주거니받거니 흥겹게 노래로 어울렸다.

 “끼니도 시원찮을 애들이 눈빛이 어찌나 영롱한지…. 어떤 녀석은 랩인지 비트박스인지 기가 막히게 읊더라고요. 아, 이 아이들이 미래로구나, 희망이구나 했어요.”

 지난달 20일부터 닷새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하이옌’ 피해현장을 다녀온 장씨의 말이다. 참사 이후 1년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천 가구가 임시가옥에서 산다. 지난 4월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장씨가 처음 방문한 재해현장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처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놀라웠던 건 해맑은 아이들 얼굴이었다.

 “1년에 태풍이 스무 개씩 온다니까, 어린 나이에도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이랄까 이런 게 있었어요. 우리가 못살 땐 우리를 도와줬던 착한 사람들 아닙니까. 가기 전엔 ‘함부로 웃지 말자’고 했지만, 순박한 사람들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어요. ”

 한국유니세프는 참사 당시 가장 먼저 긴급구호에 나선 곳 중 하나다. 국내 모금액만 22억1260여 만원에 이르러 지난 4월 네팔 지진 이전까진 역대 가장 많은 모금액을 기록했다. 이 돈으로 유니세프는 식수·위생사업과 교육지원 등에 힘쓰고 있다.

 “노래로 하나 되는 그들을 보면서 음악으로 사회 봉사할 길을 더 찾고 싶어졌어요. 도와주러 갔다가 제가 행복의 에너지를 얻어온 기분이에요.”

 지난 6월 중앙일보와 함께 백두산 등을 둘러본 ‘평화 오디세이 2015’ 여정 이후 부쩍 할 일이 많아졌다. 2일부터 한국 환경재단과 일본 비정부기구(NGO) ‘피스보트’와 함께 한·러·일을 잇는 평화대장정에 나섰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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