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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왜 경영권이 세습돼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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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요즘은 모이면 롯데가(家)의 경영권 분쟁이 화제다. 한데 이 얘기 끝엔 “최태원 SK 회장은 운도 없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지난해 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기업인 가석방론’ 애드벌룬에 바람을 넣기 시작하는데 느닷없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져 반재벌 정서가 확 일어나며 없던 얘기가 된 적이 있다. 그러다 최근 8·15 특사에 기업인을 포함시키자는 일각의 여론몰이가 시작되고, 대통령이 “기업인 사면은 안 하겠다”던 대선공약을 포기할 수 있도록 명분을 쌓아가는 와중에 롯데가의 ‘형제·부자의 난’이 또다시 반재벌 정서에 불을 붙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를 기화로 재벌개혁론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니 시쳇말로 ‘대략 난감’이다.

 따지고 보면 최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이나 롯데 가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재벌 일원의 잘못을 재벌 전체로 확장해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재벌정서법’에 따라 손해를 보니 억울할 수 있다. 한데 재계의 억울함이나 ‘재벌은 한통속’으로 보는 국민 정서나 근원을 따라가면 모두 한군데서 만난다.

 오너 일가가 ‘쥐꼬리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경영권 세습을 당연시하는 재벌의 문화가 그것이다. 외국 언론들은 이번 롯데 사태를 보도하며 한국 재벌기업들이 가족경영에 도전받지 않고 기업 지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우려했다. 한국 기업들에서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끊이지 않는 점이 국제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도 지적한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도 할 말이 많다. 한 재계 인사는 오너의 지분이 낮은 대기업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에 대해 긴 e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최 회장이 지금 감옥에 있는 것도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낮은 지분 때문에 소버린의 경영권 공격을 받은 이후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범죄와 연루돼 그리 된 것이다. 승계 준비가 잘돼 있다고 알려졌던 삼성도 최근 승계 과정에서 엘리엇의 공격을 당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는 허약하다.

 이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축적된 자본이 아닌 부채를 통한 성장전략을 취해온 원죄에서 비롯됐다. 대기업들이 자기자본 없이 빚으로 크다 보니 기업 공개를 하고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유치하면서 돈 없는 오너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못해 지분이 줄게 됐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쥐꼬리 지분은 빈약한 원시자본으로 기업을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기업보국 하려는 기업인들의 우국충정의 결과”라고 했다.

 실제로 고도성장기였던 1960년대부터 빚으로 기업을 키우는 행태는 골칫거리였다. 이에 69년 청와대에 부실기업 대책반이 생겼다. 한데 이후 정책은 그 유명한 8·3조치(72년)로 사채를 동결해주고, 이후에도 5·29, 9·28, 6·27 조치 등 부채를 완화해주는 조치 일색이었다. 이렇게 ‘우국충정’이었든 ‘대마불사’의 배짱이었든 대기업들은 우리 사회의 정책적 지원과 특혜를 통해 몸집을 불려온 게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엔 낮은 지분 구조 때문에 경영권이 공격받자 경영권 방어법도 만들어주려는 참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우리 대기업들은 ‘사회적 부채’가 훨씬 크다. 한데 그들의 행태엔 ‘부채의식’도 ‘예의’도 없다. 삼성·현대·두산·금호·롯데에 이르기까지 후계를 둘러싸고 ‘형제의 난’이 벌어졌고, 패배한 형제가 투신자살을 한 경우도 있다. 원래 ‘부잣집엔 없는 게 우애’라는 말처럼 재산 분쟁이야 그럴 수 있다 치자. 또 아버지 잘 만나 부자로 산다는데 누가 뭐랄 일도 아니다.

 한데 경영은 시장에서 검증된 경영인이 하는 것이다. 세습지위가 아니다. 쥐꼬리 지분으로 세습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기업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형제싸움으로 공조직인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게 용인돼선 안 된다. 우리의 ‘재벌정서법’은 재벌들이 받은 특혜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국민적 요구이기도 하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