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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 출신 변호사 타격 … “미국식 시간제 수임료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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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0년대 중반 비자금 조성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대기업 총수가 대형 로펌에 200억원대 성공보수를 줬다는 소문이 퍼졌다. 해당 총수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약속한 성공보수 전액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형사 사건 성공보수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로 이러한 성공보수 신화는 다시 나올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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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계와 시민단체는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이번 판결이 사법 불신의 근원이던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어 법조계가 한층 깨끗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인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전관 변호사의 거액 성공보수는 국민의 사법 불신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이제까지 변호사 보수 기준에 불투명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변협이 보수 산정 방식을 합리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참여연대 이헌욱 변호사는 “형사 사건에서 횡행하는 이른바 ‘사건 브로커’와 전관예우를 없애고 변호사의 공익적 지위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했다.

 반면 변호사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변협은 성명을 내고 “성공보수 문제는 법원·검찰 출신 변호사들이 과도한 보수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성공보수 자체를 없애는 것은 대다수 변호사의 얼마 되지 않는 수입마저 빼앗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날 변협이 회원들을 상대로 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920명 중 80.1%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직격탄을 맞은 쪽은 퇴직 이후 형사소송을 주로 맡아 온 전관(前官) 변호사들이다. 단독판사나 부장검사 출신은 5000만원, 검사장 출신은 수억원의 성공보수를 받는 게 관행이었다.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현직에서 돈을 못 벌어도 국가에 봉사한 만큼 나가면 보상을 받을 것이란 기대로 버티는 것”이라며 “이런 식이면 누가 검찰에 남아 있으려 하겠느냐”고 했다. 한 개업 변호사도 “이번 판결은 개업 변호사에 대한 학살이나 다름없다”며 “대형 로펌은 현재도 ‘타임 차지(time charge·시간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협상력이 있지만 개인 변호사들은 소액의 착수금에 성공보수를 보고 영업을 하는데 현실을 모르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점도 변호사들의 당혹감을 더하고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법이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당장 이번 판결로 ‘착수금+성공보수’로 굳어져 있던 변호사 수임료 지급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법조계는 미국식의 시간제 보수제와 함께 의견서 제출 등 업무별로 세분화된 보수 지급 방식이 확대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존의 성공보수가 착수금에 포함돼 형사 사건 착수금이 오르고 이면계약을 하는 등 ‘풍선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법원이 민사 사건의 성공보수를 계속 허용한 데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만 불리해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현재 독일과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형사 사건 성공보수를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 대통령 자문기구였던 사법개혁추진위가 형사 사건 성공보수 금지안을 권고했다. 이후 17·18대 국회에서 같은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임장혁·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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