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외국 산업 전문가들에겐 우리나라 조선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조단위 손실이 미스터리해 보일 거다.”
한 조선산업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이 3조25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삼성중공업도 올 2분기 1조원대 영업손실 전망이 나오고, 그나마 독야청청인 줄 알았던 대우조선해양이 2분기 회계에 손실충당금 2조원 이상을 반영한다는 소식에 조선업계가 거의 ‘멘붕’인 상황. 이 참에 ‘도크를 덮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거나 ‘손실의 주요인인 해양플랜트부터 손봐야 한다’는 등의 격한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오히려 해당 업계 관계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선 3사는 여전히 먹을거리가 많다”는 반응이다. 전체 조선산업 구조조정과는 별도로 이들 3사는 그렇다는 거다. 기업 관계자들이 “손실을 수업료로 생각한다”거나 “경쟁력 확보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다. 조선 전문가들은 세계 조선 시장에서 우리 조선 3사는 ‘톱(top) 3’로 ‘그들만의 리그’가 있으므로 다른 업체들과 분리해 봐야 한다고도 말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과 최근 확 끌어올린 연비효율 등에선 아직 중국과 일본이 따라오지 못하고, 해양플랜트 설비는 이들 3사가 못 만들면 아무도 만들지 못하는 과점적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발주되는 해양플랜트 물량의 70% 이상을 한국이 가져오고, 이들 3사의 수주잔량에서 해양플랜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절반 이상인 것은 새로운 설비에도 과감히 도전하는 압도적 실력 때문이다. STX도 도전했다 철수했을 정도로 그들의 생산기술은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한데 이번 3사 손실의 주범이 바로 이 해양플랜트다.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되는 게 ‘설계 능력 부재’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다. 전문가들은 설계야 원래 전문업체와 협업하는 것이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과당경쟁이다. 다른 나라 기업이 끼어든 것도 아니고 한국 기업들이 과점해 공급자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시장에서 어째서 번번이 손실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저가 수주와 경쟁이 벌어지느냐는 것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먼저 지적되는 이유가 적정 가격이 아닌 최저가 입찰로 낙찰 기업이 고통을 감수토록 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한계가격 입찰문화’에 길들어 있어 저가 발주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점. 그래서 자신들만의 과점 리그에서조차 제 가격을 못 받는 걸 당연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그보단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삼성과 현대가의 지나친 경쟁의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입찰 과정을 보면 ‘차라리 내가 먹고 죽지 너는 못 주겠다’는 식으로 불리한 페널티도 다 끌어안으며 사생결단한단다. “경쟁사를 제치고 우리가 수주했습니다”라는 보고에 칭찬해주는 기업문화가 가격을 포기토록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수주업체에 큰 타격을 입혔던 노르웨이 골리앗 FPSO나 호주 고르곤 가스전 등은 발주국의 까다로운 해양 규정이나 사정 변경과 잦은 설계변경 등으로 납기가 지연되는 고초를 겪었다. 사전에 발주처를 상대로 꼼꼼한 페널티 조항을 넣고, 위험 분담 조건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고 왔다면 막대한 손실을 끌어안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거다. 어차피 한국 아니면 제작해줄 데가 없는데도 ‘꽃놀이패’를 발주회사에 쥐여준 것이다.
이에 기업 오너들이 나서서 수주가 아닌 가격과 조건을 따지고 ‘저가 수주 금지’ 방침이라도 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담합은 안 되지만 ‘내가 한 건 했으면 다음 입찰에는 참가하지 않는 일본식 상도의’라도 배우면 어떨까. 올 5월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액은 전년 대비 3분의1 수준으로 확 줄었을 만큼 시장 상황이 최악이다. 이 위기를 업체들 스스로 과당경쟁을 끝내고 ‘경쟁심’ 대신 ‘경쟁력’을 키우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