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남도 사투리 … “이문구 뛰어넘고 싶당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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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의 시골마을에서 사투리투성이 농촌소설을 쓰는 작가 김희저씨. “뭔가 쓰는 게 좋아 소설을 독학으로 공부해 오늘에 이르렀다. 소설 쓰기는 즐거운 놀이”라고 했다. [함평=프리랜서 오종찬]

산업화에 따른 공동체의 몰락, 그로 인한 농촌 인심과 예절의 실종 현상은 한국 문학에서 낯익은 주제다. 1970년대 『관촌수필』 연작에서 소설가 이문구(1941∼2003)가 천착했던 영역이다. 이씨는 특히 정상적인 독서가 어렵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충청도 사투리와 토속어 사용에 아낌이 없었다.

그런 이씨의 문장을 두고 평론가 염무웅은 “이문구 문장의 성가신 측면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그의 소설의 묘미에 입문하는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전남 함평의 주부 소설가 김희저(59)씨의 첫 소설집 『꽃밭』(솔·사진)에 손길이 간 것은 그 때문이다. 김씨 소설은 이문구 소설을 연상시킨다. 95년부터 올해까지 발표한 단편 11편 가운데 표준어로 쓴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투리는 알아서 해석하는 게 속 편하다. 요령부득인 토속어들은 ‘친절하게’ 책 뒤편에 뜻풀이를 덧붙여 놓았다.

 단순히 형식만 닮은 게 아니다. 노총각인데다 지력이 떨어져 혼삿길이 막히자 자위행위로 욕망을 해소하는 복만(‘꽃밭’), 마을 일꾼들을 차례로 후린 신종 꽃뱀 경아와 그의 사내 대식(‘빈대떡’), 장성한 자식들을 두고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용매댁(‘괘종시계’) 등 소설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요즘 농촌의 척박한 현실을 증언한다.

 김씨는 91년 지역 문예지 ‘목포문학’, 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평단과 시장의 바깥에서 외롭게 소설을 쓰는 김씨를 전화로 만났다.

 - 사투리와 토속어 때문에 소설을 읽기 힘들다.

 “‘목포문학’ 등단 후 함평에 들어왔다. 연고는 없는 곳이다. 20여 년 동안 차츰 주민이 줄어 다섯 집에 10명쯤 산다. 그나마 원주민은 두 집뿐이다. 동물은 굉장히 많이 산다. 아침저녁으로 우는 새는 1000마리쯤 된다(웃음). 여기 살다 보니 이곳 원주민들의 언어로 농촌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그들의 언어와 생활이 내 안에 육화되는 데 10년쯤 걸렸다.”

 - 첫 소설집인데.

 “소설 청탁을 안 하더라. 저축하는 셈치고 단편도 쓰고 장편도 썼다. 하루에 단편 한 편 쓰기로 정하고 실천한 적도 있다. 소설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문법을 공부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서너 권 독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여러 번 읽어서 책장이 너덜너덜해진 것도 있다.”

- 토속어가 많은 것은 그래선가.

 “국어사전 읽으면 보물찾기하는 것 같다.”

 - 굳이 농촌소설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조용한 곳을 찾아 들어왔을 뿐인데 이곳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한 현실을 알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

 - 농촌 붕괴를 안타까워 한 이문구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귀농자들이 생기면서 소설 속 내용과 실제 농촌 현실과는 차이가 좀 있다. 교류가 없어 귀농자에 대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 어떤 소설이 좋은 소설인가.

 “소설은 진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소설적 기법을 사용하는 거다.”

 김씨는 이문구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닮고 싶지는 않단다. “건방지지만 그보다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21세기 농촌의 실상을 개성적으로 그리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한국소설의 위기 극복을 위해 독특한 글쓰기를 고수하는 작가를 소개하는 솔출판사의 ‘소설판’ 총서 두 번째 책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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