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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행복도 경쟁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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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불행하면 지는 거다.”

 인기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 이 말을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쥔 커플의 모습은 최근 본 가장 ‘웃픈’(‘웃긴’과 ‘슬픈’의 합성 신조어) 이미지였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커플 기념일을 준비하다 보니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만다”는 작가 서나래의 경험담이었다.

 “기쁨 강박 시대… 3명 중 1명 ‘SNS서 행복 과장해봤다’”(본지 6월 18일자) 기사를 읽을 때 이 웹툰 이미지가 바로 연상됐다. 또 하나 떠오른 이미지는 요절한 한국의 개념미술가 박이소(1957~2004)의 유작이었다. 옅은 주황색 바탕의 거대 간판에 기가 질리게 커다란 하얀 글자로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적혀 있는 설치미술이다.

 박이소는 북한 선전 간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 갖다 놓으면, 행복하지 못한 국가에서 행복감을 톱다운으로 세뇌시키는 프로파간다로 보여 썩 잘 어울린다. 또한 현대 한국에 갖다 놓으면, SNS에 행복하게 ‘보이는’ 이미지를 경쟁적으로 올리는 개인들의 강박관념이 바텀업으로 폭발해서 형상화된 것 같아 역시 잘 어울린다.

박이소의 ‘우리는 행복해요’ 계획 드로잉.

 “SNS에서 행복 과장한 적 있다”고 말한 사람들 중 과반수가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 『꾸뻬씨의 행복 여행』이 줄곧 스테디셀러였는데도, 그 책의 주요 메시지 중 하나인 ‘행복의 비결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실천되지 않는 모양이다.

 경쟁은 스트레스를 낳는다. 그래서 ‘행복 경쟁’을 하다 보면 ‘왜 행복해야 하나’라는 질문까지 나오게 된다. 물론 불행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불행하지 않은 것 그 이상의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대체 뭐가 행복일까?

 그에 대해 『꾸뻬씨의 행복 여행』에서 한 승려는 “행복을 목적이라고 믿는 게 첫째 실수다”라고 답해준다. 행복은 의도적으로 추구한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겪는 좋은 감정의 경험들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영국 행동과학자 폴 돌런은 비슷한 듯 다른 의견을 낸다. 행복은 막연히 추구하거나 파랑새처럼 재발견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과 목적의식의 경험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는 견해다. 이들을 비롯한 행복의 여러 정의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SNS에서 획일화된 행복의 가상현실을 구축하는 게 진짜 행복은 아닐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