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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수석이 대통령 설득 가능해야 정권 성공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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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06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현기환 신임 정무수석에게 임명장을 준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 [뉴시스]

김영삼(YS) 정부 시절 이원종(73) 전 정무수석은 원만한 당·청 관계를 위해선 박 대통령이 생각의 중심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배신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국민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면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협조가 아쉬운 건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먼저 굽히고 진실되게 상대방과 대화하려 한다면 국민이 먼저 알아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역대 정무수석들이 말하는 ‘해결사’ 비결

이 전 수석은 1987년 헌정체제 이래 가장 막강한 권한을 누린 정무수석이었다. 역대 정무수석들이 차관급인 데 반해 이 전 수석은 장관급으로 대우받았다. “정통부 장관이던 이석채(전 KT 회장)씨가 경제수석에 임명돼 예우상 장관급으로 대접해 주면서 선임 수석이던 나도 장관급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년3개월 동안 역대 최장수 정무수석으로 재임하면서 여당 총선 공천 작업에 주도적으로 관여할 정도로 YS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홍보 업무도 맡아 격주로 각 부처 차관들을 소집해 홍보 대책회의를 열었다.

실제로 그는 95년 최초로 전면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이듬해 15대 총선을 정무수석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꼽았다. “지자체 선거 실시를 위해 민자당 원내총무·사무총장, 국회부의장에게 거의 매일 전화해 대통령의 생각을 전하고 이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치른 15대 총선에선 당초 10석도 어렵다던 서울에서 27석을 건졌다. 이 전 수석은 “이회창·박찬종 등 새 인물을 영입해 판세를 뒤집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 수석은 “우리 어른(YS)은 신뢰하는 사람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지우고 맡겼다”며 “박 대통령이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현 정무수석의 역량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인 조순용(64) 전 수석 역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했다. 조 전 수석은 “청와대는 최고 권력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무수석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무수석이 대통령을 잘 설득할 수 있으면 정부도 성공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대통령도 정부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조 전 수석 재임 당시 대통령의 세 아들이 잇따라 구속된 데 이어 대통령이 탈당까지 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조 전 수석은 “대통령의 탈당은 여당과 청와대의 공식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라며 “여당과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게 정무수석으로서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를 돌파해서 정권 재창출까지 이뤄낸 비결로는 ‘민심 파악’을 꼽았다. 그는 “방송기자를 하면서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고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노무현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여론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며 “그 후에 정보기관의 보고나 여론조사 결과가 비슷하게 나오면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이 관심이 없으면 누가 일하겠나”라고 강조했다.

정무수석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설득’을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는 “설득이라고 표현하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그럴 수 있겠구나’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설득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현기환 신임 수석에 대해서는 “정무적으로 잘못됐다고 판단하면 쓴소리를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무수석의 소명 의식을 잃지 않고 이에 맞춰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여정부 때 정무수석이었던 유인태(67)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박 대통령이 서면 보고만 받지 말고 정무수석과 직접 소통해야 그가 당·청 간 불협화음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정무수석이 제 역할을 하려면 대통령에게 항상 직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현기환 수석에 대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친박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전 정무수석들에 비해선 조건을 갖춘 사람이 들어간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유 의원은 참여정부의 처음이자 유일한 정무수석이었다. 그가 총선 출마를 위해 2004년 2월 사퇴한 후 정무수석직은 없어졌다. “여당은 대통령이 직접 소통하고 야당의 협조는 부처 장관들에게 맡기면 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론 17대 총선 때 웬만한 여당 인사는 다 당선되는 바람에 맡길 사람이 없기도 했다”고 유 의원은 설명했다.

유 정무수석에게 맡겨진 주 임무는 지역주의 타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지역 구도를 깨는 선거제도를 마련해 준다면 다수당에 총리를 뽑을 권한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이재오 총장을 수시로 접촉해 의사를 타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한나라당 내 영남 의원들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고 한다.

자신의 또 다른 주요 임무로는 여당 인사들의 ‘심기 관리’를 꼽았다. “여권과 보수 언론에서 취임 초부터 노 대통령을 맹공격하니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소주 한잔 하면서 달래줘야 했다. 정대철 당 대표가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된 후 면회 온 사람들에게 노 대통령 원망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찾아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진석(55) 전 정무수석은 “정무수석의 역할은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무수석의 역할이나 보폭은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어떤 임무를 주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지적했다. 정무수석의 성공 여부는 ‘대통령의 스타일’에 달렸다는 것이다. 정 전 수석은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고 여당 내 친이-친박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0년 7월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이 대통령이 정 전 수석에게 맡긴 과제는 ‘당·청 관계 정상화’와 ‘정권 재창출’ 딱 두 가지였다. 이에 정 전 수석은 “하루속히 박근혜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건의했고 그해 8월 21일 이뤄진 회동에서 이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한다’고 합의했다.

정무수석의 중요한 자질로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과의 갈등까지 해소할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꼽았다. 여야 원내대표였던 김무성·박지원 의원과 물밑 조율을 통해 그해 국회에서 이례적으로 예산안을 12월 8일 통과시킨 일이나 8·15 대규모 특별사면 당시 야당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 ‘대통합 특별사면’을 이끌어냈던 일 등을 대표적인 일화로 꼽았다.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수석들이 장관 내정자를 청와대로 불러 사전 청문회를 실시한 것도 ‘통합’의 일환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지명한 내정자가 교체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발탁됐다. 박 대통령이 8·15 특별사면을 예고한 상황에서 현 수석도 이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 전 수석은 이를 위해 “정무수석은 청와대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바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고 ‘광폭 행보’를 강조했다.

이충형·추인영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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