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삼성, 소액주주가 지켜줬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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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어제 통과됐다. 삼성물산 주주 69.53%가 합병에 찬성했다. 예상 밖 압도적 찬성이다. 이로써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 44일간의 피 말리는 전투도 일단 막을 내렸다.

 합병안 통과로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게 됐다. 제일모직과 합병한 신(新)삼성물산은 사실상 그룹 지주회사가 된다. 기존의 복잡했던 순환출자 구조는 신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의 일자형으로 바뀐다. 신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다 안정적인 지분으로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게 됐다. 이번 합병안 통과를 놓고 이 부회장의 삼성 승계가 시장의 신임을 얻었다고 보는 이유다. 오는 9월 1일 출범하는 신삼성물산은 매출 34조원의 글로벌 의식주휴(衣食住休)·바이오 선도 기업으로 재탄생한다.

 박빙을 예상했던 표 대결이 삼성의 압승으로 끝나긴 했지만 남은 과제는 크고 무겁다. 국제 투기자본의 공격과 이에 맞설 경영권 방어 수단, 주주가치와 권리,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 우리 사회와 재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이런 사태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우선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도 허용하고 있는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의 도입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방어 장치들은 ‘주주 친화적 경영’을 하는 기업에 한정돼야 하며 공론화 과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내 대기업이 과도한 경영권 방어비용에 치여 성장과 일자리를 위한 투자를 미루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삼성과 대기업들은 반(反)대기업 정서 완화와 주주 친화 경영 강화란 두 가지 큰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삼성이 이번에 엘리엇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린 것은 합병 결정·추진 과정이 그만큼 허술하고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엘리엇의 공격을 받고서야 배당 성향을 30%로 높이고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주주 친화 경영’을 약속했다. 평소 기업과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몸을 낮추고 최선을 다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이날 주총에서 “엘리엇이 아니라 국내 기관이 (합병 반대를 이끌었다면) 동조했을 것”이라고 했던 한 소액주주의 지적을 삼성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영은 허술하게 해놓고 애국·온정주의에 기대 위기를 넘기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남은 전투에도 대비해야 한다. 어제 삼성물산 주가는 10.39% 폭락한 6만2100원으로 마감했는데, 이는 “합병이 돼야 주가가 오른다”던 삼성 측 주장이 무색해질 만한 수준이다. 이를 빌미로 엘리엇은 다양한 법적 분쟁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 지분만 웃돈을 얹어 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런 공격이 이어지면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속도가 떨어지고 합병도 늦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