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실패한 사무총장 폐지 실험 …‘혁신’이름으로는 잘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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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당의 사무총장을 없애는 게 혁신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이 요즘 새로운 정치실험을 앞두고 어수선하다. 김상곤 위원장이 이끄는 당 혁신위원회는 최근 “사무총장 제도를 폐지하고 총무·조직본부장으로 역할을 나눈다”는 혁신안을 내놨다. 혁신안은 13일 당무위원회를 통과했다. 20일 중앙위원회만 넘으면 확정이다.

 새정치연합 전신인 민주통합당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윤호중 의원은 14일 “질병의 원인까진 아니고, 증세만 치료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도 때론 필요하다”면서도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혁신위는 사무총장제 폐지 명분으로 계파갈등을 들었다.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계파싸움을 벌이느니 아예 없애자는 뜻이다.

 ‘제왕적 사무총장’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총장 권한이 막강한 건 사실이다. 범친노로 분류되는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에 강력 반대했던 비노진영도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시절엔 역시 노웅래·주승용 의원 등 계파 의원들을 사무총장에 앉혔다.

 사무총장은 ‘돈과 조직’이 움직이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새정치연합이 지원받은 국고보조금은 338억원이다. 그해 6·4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확보한 중앙당 후원금이나 특별당비도 상당 수준이다. 사무총장은 ‘회계책임자’로, 이 돈에 대한 배분 권한이 있다. 하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고보조금 사용 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다. 지난 1월 전남도당위원장 경선에서 “338억원의 국고보조금이 전남도당에는 한 푼도 내려오지 않았다”(황주홍 의원)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사무총장이 자의적으로 정치자금을 집행한다는 의심도 받아왔다.

 동시에 사무총장은 조직강화특위(지역위원장 선정)와 당원자격심사위원회, 당직자인사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장이다. 선거 땐 공천심사위원회의 당연직 간사다. 여론조사 룰이나 기관 선정 등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비노 진영이 문재인 대표의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을 강력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짐을 싸게 된’ 최재성 사무총장은 “내가 ‘공천 물갈이’를 너무 확실하게 할 것 같으니 비노 진영이 반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노 진영도 부인하진 않는다. 익명을 원한 비노계 의원은 “친노를 등에 엎고 ‘칼춤’을 출 게 뻔한데 어떻게 찬성하겠느냐”고 했다.

 문제는 사무총장제 폐지 이후다. 윤 의원은 “사무총장을 없애더라도 사무부총장들은 어떻게 할 건지, 총무·조직본부장 아래 기구는 어떻게 만들 건지 구체적 계획 없이 일단 자리만 없애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총무·조직본부장으로 사무총장의 권한과 기능을 분산시키는 안은 과거 열린우리당(새정치연합 전신)에서 실패한 실험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지금처럼 사무총장제를 폐지하고 총무·조직본부장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양 본부장제를 폐지하고 ‘사무처장’ 체제로 되돌아갔다.

 열린우리당 출신의 한 인사는 “두 기능이 분리돼 별도 조직이 됐더니 커뮤니케이션도 안 되고, 업무 중복과 비효율만 반복됐다”며 “특히 중복 업무에 따른 예산 낭비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 측근은 “사무총장을 대체할 본부장엔 누구를 앉힐지를 놓고 계파전이 과열될 수도 있다”며 “대등한 지위의 본부장 체제에서 누군가 사무총장처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면 ‘그럴 걸 왜 자리를 없앴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혁신위에 참여하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사무총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공천이 달라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권한이 과도한 것은 사실”이라며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혁신 흐름에 맞다”고 강조했다.

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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