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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림 “20년 만의 무대, 늙었다는 말 안 들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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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잘자요, 엄마’로 20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배우 김용림. TV 속 근엄한 어머니 상을 벗고 철없고 수다스런 엄마 델마로 변신했다. [사진 수현재컴퍼니]

배우 김용림(75)이 연극 무대에 섰다. 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개막한 연극 ‘잘자요, 엄마’의 엄마 델마 역을 배우 나문희(74)와 번갈아 연기한다. 1995년 극단 산울림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에 출연한 이후 꼭 20년 만에 돌아온 연극 무대다.

 “첫 공연 전날엔 흥분되고 걱정돼 잠도 못 잤어요. ‘늙었구나’란 말 안 듣게 잘해야 할 텐데요.”

 공연장에서 만난 그는 마치 연기 초년생처럼 긴장한 표정이었다. 3일 밤 공연 직후 “아쉽다.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늘 강인하고 엄한 인상이었던 TV 속 그와 사뭇 달랐다.

 그의 연기경력은 반세기가 넘는다. 61년 KBS 성우로 ‘목소리 연기’를 시작했고, 64년 한국 최초 일일드라마인 TBC ‘눈이 나리는데’로 안방극장에 데뷔했다. 80년대까지는 연극 무대에도 자주 섰다. 73년엔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87년 연극 ‘잘자요, 엄마’의 국내 초연 때도 그가 델마 역을 맡았다. 당시 딸 제씨 역은 윤석화가 연기했다. 김씨는 “예전엔 드라마에 야외 촬영이 거의 없어 방송을 하면서도 연극 할 시간을 낼 수 있었는데, 90년대 중반 이후론 드라마 한번 들어가면 1주일에 닷새씩 촬영을 해 연극 엄두를 못냈다”고 말했다.

 83년 미국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인 ‘잘자요, 엄마’는 파격적인 이야기다. 어느 날 저녁 딸 제씨가 엄마 델마에게 “오늘 밤 자살하겠다”고 선언한다. 간질병을 앓고 있는 제씨는 남편과 이혼했고, 사고뭉치 아들은 가출해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그날 밤 델마와 제씨는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진정한 소통을 시작한다.

 그는 “초연 때를 돌아보면 지금 감정의 반도 못 느끼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제씨가 얼마나 외로웠는지가 이제서야 보인다. 엄마가 늘 옆에 있었지만 제씨는 늘 혼자였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고 했다.

 그는 연습 때마다, 공연 때마다 엄마 델마의 절절한 심정이 된다. 매번 눈물을 쏟고 소리를 지르며 자살하려는 딸을 말린다. 에너지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배우들은 무대에서 감정을 타면 신기 같은 게 발휘된다”면서 “틈 나는 대로 뜨거운 누룽지물을 마시며 목을 관리하고, 기운이 처질 때는 병원에 가서 링거도 맞는다”고 했다.

 그는 현재 KBS 일일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도 출연 중이다. 그는 “배우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작가에게 전화해 야외촬영 분량을 줄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6월 말부터는 드라마 촬영을 1주일에 두세 차례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7년 전 연극열전 시리즈 중 하나로 ‘잘자요, 엄마’ 재공연을 했을 때도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스케줄이 안 맞아 단칼에 거절했더니, 당시 연극열전 총기획자였던 조재현(50)이 ‘언제까지 TV만 하실거냐’고 묻더라고요. 부끄러웠어요. 이번에 다시 기회가 와 욕심을 냈죠.”

 그는 연극 출연에 대해 “관객과의 생(生)호흡이 무섭기도 하지만 희열이 크다”고 했다. “무대에 서고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니, 천상 배우 체질이다. 그는 “어떤 배역이든 작가가 표현하려는 인물을 최대한 근사치까지 구현해내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며 자신의 ‘연기 철학’을 밝혔다.

 향후 계획을 물었다. “생각도 안 해봤다”는 답이 돌아왔다. “8월 16일 이 작품 마칠 때까지는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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