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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만으론 저출산대책 한계 … 예산 쥔 기재부 종합처방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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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05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1.08로 홍콩·마카오를 빼곤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고 과거 경제개발 5개년계획처럼 5년 단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퍼부은 예산만 150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출산율은 1.21로 9년 동안 0.03을 끌어올리는 데 그쳤다.

 정부 입장도 오락가락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직속이던 위원회를 보건복지부 산하로 격을 낮췄다가 임기 말 다시 대통령 직속으로 올렸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시절 구성된 3기 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위원회를 방치하다 출범 후 2년 만인 지난 2월에야 4기 위원회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2016~2020년을 목표로 하는 3차 기본계획의 수립 방향을 제시하고 9월까지 구체안을 만들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3차 기본계획 기간을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3차 기본계획엔 저출산의 근본 원인인 만혼과 비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무상보육에만 매달려 왔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복지부가 기본계획을 맡고 있는 한 대책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의 고리를 끊자면 결혼에서부터 육아를 거쳐 여성의 사회 재진출까지 전 단계를 아우르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전 부처가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복지부 힘만으론 역부족이다. 게다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청와대 직속이긴 하지만 손발이 없는 위원회일 뿐이다.

 이 때문에 획기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만들자면 청와대가 직접 나서든지 최소한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가 총괄 기능을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과거 1960~70년대 출산억제 정책이 성공을 거둔 건 예산권을 쥔 경제기획원이 총대를 메고 복지부는 물론 국방부·법무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협조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며 “복지부에만 맡겨선 종합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세우기 어렵고 추진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시급한 건 비혼·만혼이란 ‘결혼 크레바스’를 넘는 대책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무상보육에 예산을 쓸어 넣은들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

 비혼·만혼의 근본 원인은 결혼 비용이다. 미혼 남성은 취업이 갈수록 늦어지는데 예식장비나 신혼주택 같은 결혼 비용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러니 학력도 높아지고 사회 진출도 활발해진 여성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 간극을 좁히자면 결혼 비용을 줄여주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주택마련 비용 급등이 결혼의 1차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주거 환경이 쾌적한 곳의 자투리 땅을 활용해 정부가 신혼주택 임대주택을 짓고 여기서 돈을 벌어서 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을 줄여야 하는 건 물론이다. 중견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권모(27·여)씨는 “졸업 논문 제출을 미루는 방식으로 아직 대학에 적을 걸어두고 있다”며 “취업이 될 때까지는 대학생 신분인데 언제 남자를 만나 결혼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를 높이자면 연공서열형인 현재의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다. 이 역시 복지부 힘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체면 때문에 과도한 혼수 부담을 갖고 시작하는 결혼 문화도 바꿔야 한다. 결혼정보업체인 비에나래의 손동규 대표는 “혼수나 집, 부모의 경제적 조건 등을 따지는 분위기 때문에 상견례에서 틀어지는 경우가 20~30%에 달한다”며 “여성이 학력이나 스펙이 (남자보다) 좋아도, 나이가 많아도 결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 개선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대책의 초점도 기혼자 중심에서 결혼장려 쪽으로 비중을 분산해야 한다. 본지가 2006~2015년 시행된 ‘1~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468개 과제를 분석한 결과 결혼 관련한 정책은 12개에 불과했다. 김동원 교수는 “정부가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 과감한 대책을 즉각 시행해야 끊어진 결혼 사다리가 다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동호 선임기자, 박현영·정선언·김민상·김기환·정원엽 기자 dongho@joongang.co.kr

◆의견 내주신 전문가들(가나다순)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외숙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 교수, 김혜영 숙명여대 산업정책대학원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박수경 듀오웨드 대표,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손동규 비에나래 대표, 손종칠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장보영 기획재정부 미래사회전략팀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윤희숙 KDI 연구위원,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장, 이익진 국토교통부 주거복지기획과장,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조영섭 가연결혼정보 전무, 최성재 한양대 석좌교수,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홍상욱 영남대 가족주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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