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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경영] 공고→야간대→공구상→경영인 … 매출보다 기술 1위 추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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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호 15면

수산중공업 정석현 회장은 “명문대 지향적인 교육, 대기업 선호 직업관이 깨져야 우리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김춘식 기자

정석현(64) 회장은 5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수산중공업(건설장비 제조)은 일본·핀란드·스웨덴 기업의 기술력을 추격하고 있다. 반면 플러스기술(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업계를 선도하는 입장이다. 수산중공업이 2011년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플러스기술은 2011년 벤처창업대전 대통령상을 받았다.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

정 회장은 1970년 전주공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과(야간)에 입학해 79년 졸업했다. 이후 청계천에서 공구 장사로 사업 자금을 만들어 경영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를 만나 공유하고픈 메시지를 들었다.

해외시장서 일본 제품과 동급 대우
-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게 기업 잘하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30년여 년 경영을 하다 보니 조금씩 다른 깨달음이 왔다. ‘번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인재 육성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수산중공업은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크롤러드릴·유압브레이커·크레인 같은 건설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청장 한정화)의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됐다. 우리 목표는 현재 1300억원 매출에서 2023년까지 1조원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다.”

-수출은.
“90여 개국에 수출한다. 우리 회사 특징은 중소기업이지만 대기업에 대한 완제품·부품 납품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출할 때도 종합상사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자체 딜러망을 통한다. 설계에서 판매·수출까지 일관체제를 구축했다. 현지 공장이 있는 중국 시장에서는 저희 제품이 일본 제품과 같은 가격 수준으로 팔리고 있다. 핀란드·스웨덴 제품이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수산중공업 입장에서는 아틀라스 코프코(Atlas Copco AB)나 샌드빅(Sandvik)이 선발 기업이다. 중국이 굉장히 빨리 따라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 중국 기업이 선발 기업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의 소재 열처리 기술이 유럽에 비해 많이 뒤진다. 유럽과 우리 사이에 일본이 있는데 3년 내로 일본 기술 수준을 따라잡아야 한다. 우리 회사가 유럽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10년, 20~30년이 걸릴 것이다. 기술은 이론만으로 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어떤 각오로 임하고 있나.
“제가 ‘월드클래스 300 기업’ 선정 신청을 하면서 전 직원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많이 파는 기업 순위는 항상 바뀐다. 하지만 기술이 1위인 기업은 잘 안 바뀐다. 일등 기술 기업의 공통점을 찾아 보니 딱 한 가지 있다. 연구개발(R&D)이다. 우리는 많이 파는 회사가 아니라 기술력이 1위인 회사가 돼야 한다’. 직원들이 저와 뜻을 같이하기에 목표를 달성하리라고 본다.”

-문·사·철(文史哲) 계통 학생들 취업이 어렵다.
“그동안 이공계가 산업현장에서 기여도에 비해 사회적으로 대우를 못 받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에서 기술고시 출신이 장차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에도 이공계 출신이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 입법 단계에서 모든 게 결판난다.
과거에는 선진국을 베껴서 싸게 잘 만들어 팔면 되는 시대였다. 베끼는 것만으로는 중국이나 베트남을 뿌리칠 수 없다. 이제 기술력으로 우리 경제력을 지탱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기술자·공학도가 대우받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중소기업에 취직하려는 본인의 의지가 있어도 장모가 반대하기 때문에 못한다. 장모가 ‘우리 딸 거기로 시집보내면 잘살겠구나’라고 생각해야 균형발전이 이뤄지고 출산 문제도 해결된다.”

지방대 출신으로 연구진 꾸려 세계적 특허
-중소기업 친화적인 법을 많이 만들면 될까.
“세상 일은 법으로 안 된다. 영리한 사람들이 법을 악용한다. 법보다는 관습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 법을 아무리 촘촘하게 잘 만들어도 운영이 잘못되면 배운 자, 있는 자,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하고 서민만 피곤하다. 법이나 규제가 느슨하게 돼 있더라도 그것을 선용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수산중공업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대학까지 학자금을 준 게 7~8년 됐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계기가 있다. 어느 날 저와 직원들은 어떤 관계인지 생각해봤다. 조선시대의 지주-머슴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식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는 아프면 치료해줘야 하고, 가르쳐야 하고, 각종 리스크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부부상해보험을 들어준다. 우리 회사 ‘식구’는 전체 1000명이 좀 넘는데 교통사고, 암 치료비가 보험으로 거의 커버가 된다. 사망 시 보험금은 6000만~7000만원에서 1억2000만원 정도까지 나온다. 그게 회사가 주는 부의금이 되는 것이다.
또 아침·점심·저녁을 제공한다. 자녀들 중·고등학교 학비는 전액, 대학은 등록금의 80%를 준다. 다 줄 수도 있겠지만 20%를 자신이 내면서 100%가 얼마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 위해서다. 모든 종업원 자녀가 중학교 2학년 때 적성검사를 받도록 비용을 지원한다. 자녀들에게 무조건 공부 잘하라고 하지 말고 뭘 잘하는지 알아내 교육을 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내가 정석현이가 경영하는 회사에 입사해 사고 저지르지 않고 근무하면, 애들 학비는 대학까지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아주 나태하다든지 사고를 친다든지 동화를 못한다든지 해서 도저히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면 우리 식구다.”

-플러스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선점자(first mover)’인가.
“플러스기술은 유해정보 차단과 인터넷 사용관리 솔루션을 만드는 회사다. 박형배 이사가 안동대 대학원생이었던 97년 대학생 소프트대회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게 회사 창립 계기가 됐다. 98년부터 10년 동안 120억원 정도 개발비를 쏟아부었다. 2008년 처음으로 이익을 냈다. 이제 매년 60억~70억원씩 남는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플러스기술은 연구진이 전원 지방대 출신이다. 저도 원래는 고졸이고 사업 분야는 건설이다. 인터넷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엘리트가 아닌 마이너리티(minority)에 속한다고 신기술에 도전을 못하라는 법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는 0.01%도 안 된다. 마이너리티 성공 스토리가 많아야 세상이 발전하고 열정적·의욕적으로 변한다. 엘리트만 성공하는 사회는 착취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기술로 승부하는 국가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열정을 가진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정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열정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심어주자.”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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