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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버블까지 붕괴될라 … 리커창 “45조원 긴급 수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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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증권시장이 9일 한숨 돌렸다. 중국 증시는 지난 6월 12일 이후 한 달도 안 돼 33% 정도 폭락했다. 중국 증시의 거품이 붕괴됐던 2007년보다 더 가파른 추락이다. 그해 고점을 찍은 10월 16일부터 27일간 15% 남짓 빠졌다. 이 정도는 미국의 주가 폭락 역사와 견주면 약과다. 1929년 10월 대공황 땐 이틀 새에 23% 이상 추락했다. 87년 10월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엔 주가가 하루 새에 22%나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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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서방 언론은 두려운 눈길로 상하이와 선전 증시를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중국 주가 하락이 그리스 사태보다 두렵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주가 추락으로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비롯한 중국 경제팀이 추진하는 큰 그림이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무슨 말인가.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신흥시장 총괄대표는 이날 칼럼에서 “시원찮은 실물경제를 살리려는 리커창에게 증시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리커창은 가계 저축 124조 위안(약 2경2580조원)을 증시로 끌어들여 기업의 자금으로 쓰려는 노력을 했다. 샤르마는 “빚에 찌든 중국 기업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해 부채를 상환하고 투자를 늘리도록 하는 게 리커창의 프로젝트였다”고 설명했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주가 상승은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최근 주가가 추락하면서 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증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지난 8일 밤에 열린 중국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는 2500억 위안(약 45조원)을 긴급히 경제 분야에 투입하는 걸 검토하기로 했다. 9일에는 지분 5% 이상을 소유한 대주주들이 주식을 향후 6개월 동안 팔지 못하도록 했다. 이 덕분에 추락하던 주가는 이날 진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금융과 실물경제가 충격을 받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커서다.

 중국 정부가 주식시장을 떠받치려고 하는 건 주가 하락이 ‘버블 트라이앵글 붕괴’의 서막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버블 트라이앵글이란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교수가 진단한 ‘신용(빚)·부동산·주식’ 버블 3종 세트다. 이게 붕괴되면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큰 충격파를 던진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적잖은 중국 투자자의 돈이 날아갔다. 약 330만 명의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금융회사에 주식 등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이게 마진론(Margin Loan)이다.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지난달엔 이런 빚이 2조 위안까지 급증했다. 문제는 주가가 떨어지면서 담보비율을 맞추기 위해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점이다. 투자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금융회사는 담보로 잡은 주식을 처분한다. 그 바람에 주가가 더 떨어진다. 투자자들은 빚더미에 앉는다. 악순환이다.

 주가 하락에 손실을 본 투자자 중 상당수는 빚을 내 집을 사 뒀다. 영국 BBC방송은 8일 “많은 투자자가 주가 하락으로 돈을 잃어 주택담보대출을 제때 못 갚을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면 금융회사는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부쳐 처분한다. 주가 추락이 부동산시장 경착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업들도 안전하지 못하다. 주식담보대출을 대거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WSJ는 “중국의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기업마저 자사 주식을 맡기고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했다”고 전했다. 주가가 추락했기 때문에 기업도 큰 손실을 봤다. 이는 기업의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져 투자 감소와 경기 둔화를 심화시킨다.

 버블 트라이앵글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리커창 총리가 급히 움직였다. 중앙은행까지 동원했다. 여차하면 증권사에 자금을 지원할 요량이다. 그 직전까지 중국 정부가 추진해 온 시장 친화적 정책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이다. 미국 재무장관 제이컵 루가 “중국 정부의 개혁(시장화) 노력이 후퇴해 장기적인 성장이 걱정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주식시장 안정세를 확신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자산운용 이머징마켓그룹 회장은 “중국의 비상조치는 주가 하락을 잠시 미루는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버블 트라이앵글이 붕괴되면서 실물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강남규·하현옥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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