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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와 6남매 호텔 전전 13세에 발레 시작해 인간 승리

중앙선데이

입력

미국 최고의 발레단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창단 75년 만에 첫 흑인여성 수석무용수가 탄생했다. 흑인 여성으로 발레계의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은 1960년대 활동한 레이븐 윌킨슨(Raven Wilkinson·80)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6월 30일(뉴욕 현지시간)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32)가 발레단 최고등급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2년 한국인 발레리나 서희가 수석무용수가 됐다는 낭보를 듣고 기뻐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이것이 가능해?’라는 놀라움 때문이다.

백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수석무용수가 되는 것이 동양인은 그나마 가능하고 기쁜 일인데, 왜 흑인은 불가능하고 놀랄 일인가.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흑인이 추는 춤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아마 발레는(특히 고전발레는) 백인의 문화 속에서 탄생했고, 백인의 전유물이라는 인식 때문 아닐까. 하얀 칠로 분장하고 타이츠를 신으면 백인과 별 차이가 없는 동양인과는 달리, 굴곡이 두드러진 체격과 아무리 분장을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피부색 때문에 흑인은 불가능하다는 선입관까지 갖고 있다면 말이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코플랜드는 13세 때 발레를 시작했다. 모텔을 전전하며 6남매를 홀로 키운 어머니 밑에서 발레를 시작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리 일찍 시작하지도 않았고 체격 조건도 좋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2년 만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녀는 시작한지 5년만에 2001년 ABT 군무진에 합류했고, 2007년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산이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수석무용수의 자리는 흑인으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서전 『Life in Motion』을 통해 그녀는 발레리나에 대한 편견을 깼다. 인종 문제에 대한 강한 발언도 하고 CBS 방송이 그녀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도 하면서, 이제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팔로워가 50만 명이 넘는다. 그 결과 2015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100명 가운데 포함돼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나는 오래 전 흑인으로 구성된 앨빈 에일리 무용단 공연을 처음 보고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흑인만이 가지고 있는 탄력적인 움직임의 강도는 백인이나 동양인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무척 강했다. 그 후 모던 발레계의 거장 모리스 베자르 작품에서도 다양한 인종의 무용수 중에 신체의 선이 매끄럽지는 않지만 폭발적인 힘을 과시하는 흑인무용수가 유독 눈에 띄곤 했다. 그만큼 흑인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청중을 강하게 압도하는 마력까지 가지고 있다.

드디어 꿈을 이룬 포틀랜드. 솔리스트 8년 만에 수석무용수 자리에 올라 75년의 장벽을 깬 것처럼, 오랜 역사의 고전발레 속에 숨어있는 고정관념을 조금씩 깨 나가며 발레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가길. ●

글 장인주 무용평론가 cestinjoo@daum.net, 사진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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