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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부활시켜야

중앙일보

입력

어느덧 다음달이면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광복 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민족긍지’ ‘국운융성’ ‘미래희망’을 주요 키워드로 관련 행사들을 준비해 왔다. 정부 차원의 광복절 경축식뿐만 아니라 서대문 형무소 지역을 개수한 ‘독립 명예의 전당’ 개관, 위안부 자료집 집대성 및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그리고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한국경제발전관’ 개관 등의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과 중국도 각각 ‘전후 70년’과 ‘승전 70년’을 다른 방식으로 기념하려 하고 있다. 이웃 나라들의 기념방식이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현재까지의 ‘전후 70년’을 총결산하고 향후 일본의 비전을 제시하는 ‘아베 담화’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학자·경제인·관료 출신 16인으로 구성된 ‘21세기 구상 간담회’를 조직하고 이후 7차례 이상의 회의를 열었다. 간담회는 20세기 전반기의 역사 평가, 전후 70년 일본의 성취, 21세기 비전 등에 관한 일련의 주제를 논의해 왔다. 아베는 7월 말 이 간담회의 최종 보고서를 참조하면서 자신의 담화를 구상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논의 과정에서 권위있는 일본 정치외교사 학자이면서 간담회 좌장대리를 맡고 있는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전 도쿄대 교수가 과거 일본이 일으켰던 만주사변 등이 침략전쟁이었고, 조선 등에 대한 식민지 지배도 잘못된 것이었음을 아베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아베가 자신의 외교안보정책 브레인이기도 한 기타오카의 주장을 선선히 수용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베의 8·15 담화에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중지를 반영하려는 일본적 기념방식은 참고할 만 하다.

한편 중국은 9월3일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항일전쟁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려 한다. 러시아가 지난 5월에 그러했듯이 다수 우방 국가들의 지도자 및 군대를 초청해 인민해방군과 함께 행진을 하게 함으로써 국제적 연대도 보여주고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도 과시하려 한다.

문제는 아베의 전후 70년 담화와 중국의 승전 70주년 군사 퍼레이드가 한국에 만만치 않은 과제들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 담화에는 과거 일본 정부가 표명했던 담화들을 계승하겠다는 수준의 입장이 표명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경우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아베가 취임 초기의 입장을 바꿔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제국주의 일본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나, 식민지 지배 및 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점을 나름대로 평가해 줄 필요가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중국이 ‘승전 70주년’ 퍼레이드에 남북한 지도자의 참석을 정식 요청한 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문제도 녹록치 않다. 정부는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항일전쟁 시기에 창설된 광복군이 우리 군의 전통 가운데 하나로 계승되고 있고,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최근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전향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아베 담화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평가해 주고, 중국이 요청하는 ‘승전 70주년 퍼레이드’에도 일정한 형식을 갖춰 참가한다면 올해 하반기에 우리 주도로 한·중·일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이 자연스럽게 마련될 것이다. 이 정상회담에서 태평양전쟁 70주년을 맞아 더 이상 동북아 지역 내에 국가 간 갈등과 전쟁이 없는 질서를 함께 창출할 것을 공동선언에 담는다면 어떠할까. 이러한 외교전략의 추진이 100여년 전에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면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원대한 비전에도 부응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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