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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인류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험난한 경쟁속에서 한 종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내부적인 단결이 무엇보다 필요했던 것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이며 그 핵심은 부부다.
부부의 결합은 신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같은 신의의 파괴는 가정, 나아가 사회의 파괴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그 결과 종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신의에 대한 배신의 상징인 간통은 이래서 개인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제각기 신에 의하여 선택된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종족들의 생존의 차원에서 용서될 수 없는 중죄로 규정되었다.
원시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사회에서 여성이 받아온 참혹한 처우릍 만일 오늘날의 여권운동가들이 안다면 아마 분개함에 앞서 모두 기절했을것이다.
원시사회에서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로서 노동과 종족번식의 수단으로서의 지위밖에 인정되지 않았다. 이래서 간통은 범죄의 서열중에서 살인과 절도 다음쯤으로 무거웠다.
전전 일본도 간통은 여자가 간통했을때 그 여자와 또 상간한 남자만을 처벌하였지 남자가 간통한 경우는 눈을 감았었다.
그런데 역사가 흐르면 사회도 변화하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의식도 달라진다. 법이란 공동사회에 있어서의 자기규제의 약속이고 그와 같은 자기규제는 공동사회 유지를 위한 만인공감의 필요에 의한 것인데 이 만인공감이란 때의 흐름에 따라 반드시 묶여 있지만은 않는 것이다. 간통을 보는 눈 역시 그렇다. 간통죄를 받치고 있는 두개의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첫째 오랜 역사를 통해 깨우치다보니 자기들만이 꼭 신에 의해 선택된 종족이 아니라는것도 차차 깨닫게 되었고 전쟁은 종족보존에서가 아니라 그 번영의 목적으로 하는것으로, 그 목적이 약간 달라졌다.
전쟁을 위하여 항시 일치단결하는 긴장을 강조하기보다는 태어난 인생을 얼마나 사람답게 살아나가느냐는 것이 보다 중요한것으로 생각케 된 것이다. 또 여성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잔·다르크」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도 못하는 구국을 했고 「퀴리」부인 같은 훌륭한 학자도 나왔다. 자기만이 잘난 것으로 알았던 남성들도 여자나 남자나 따져보면 매한가지였다고 그 오랜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간통죄는 문명이 앞선 나라의 순서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형법에 규정된 간통죄를 없애느냐 그냥 놓아두느냐를 놓고 시비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 간통죄는 그 처벌에 남녀의 차별이 없는 말하자면 민주적인 간통죄라 할수있다.
문제는 「법」이라는 국가권력을 빈 제재를 떠난 우리 스스로의 자율규제의 의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하는 우리의 윤리의식 정도에 있는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된다고 해서 그것이 죄의 테두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니며 부부의 신의는 여전히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기본법리로 남고 그 배신은 죄악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원죄로서 남는 것이다.
근래 갑자기 「자율」이란 말이 유행되고 있지만 이 자율이란 그렇게 어렵다는 자극을 뜻하는 것으로서 여간 어렵고 또 한편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신을 때리는 것과 같다.
지적수준이 높은 사회, 또는 개인에 있어서 자책이상 무서운 형벌은 없다. 자책에 못이겨 자살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책의 형벌정도는 바로 사형과 같은 것이다.
원죄를 깨닫고 자책하는 자세, 또 원죄를 범한 사람을 지켜보는 싸늘한 주위의 눈총, 이것은 바로 형벌이다.
우리사회도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어디까지와 있는지를 나는 정확히 가늠할수 없다.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과거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날뛰고 또 그것을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는것같은 인상을 받을 때마다 이 사회를 재는 나의 자는 왔다갔다 한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선진의 추세에 맞추어 간통죄를 폐지하자는 마당에 자율을 규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지닌 우리사회의 의식구조가 이래서야 되겠는가하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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