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24시] 한국인의 마음, 검찰의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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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민 사회부문 기자

“현재 특별수사팀 상황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돛단배와 비슷합니다. 진실이란 등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팀 관계자가 4월 17일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수사팀을 돛단배에, 수사상황을 망망대해에 비유했다. 초대형 비리 의혹 수사를 앞둔 검찰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검찰과 수사상황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본지는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2008년 1월 1일부터 7년 6개월간 트위터ㆍ블로그에 등록된 70억 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한국인의 마음’ 시리즈를 6회에 걸쳐 보도했다. 그중엔 검찰ㆍ경찰ㆍ법원ㆍ청와대ㆍ정부ㆍ국정원 등 국가기관과 관련된 자료도 있었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바람’(29.7%)ㆍ‘슬픔’(18.6%)ㆍ‘두려움’(14.9%)ㆍ 수치심(12.1%)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다른 기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수치심’이 6개 기관중 가장 크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수치심’에 포함되는 키워드는 ‘부끄럽다’ㆍ‘미안하다’ 등이다. 검찰과 바람과 수치심. 무엇을 의미할까. 이 자료를 전문가들에게 제시하고 의견을 물었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을 지냈던 모 교수의 분석은 ‘망망대해’나 ‘돛단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형 비리가 아무 기미도 없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게 아니잖아요. 국민들은 이미 수면 아래에 수많은 비리와 부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처럼 비리의 조각이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면, 국민들은 검찰을 바라봅니다. 이번엔 제발 수면 아래까지 낱낱이 밝혀 내기를 기대하면서요. 그리고, 검찰은 매번 기대에 어긋나죠.”

검찰이 상황을 한참 잘못 인식했거나, 적어도 한참 잘못 표현했다는 의견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대한민국이라는 바다’는 아무런 비리의 낌새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보다는 부정의 부유물들로 가득찬 오염된 바다에 가깝다. 그리고 ‘검찰이라는 배’는 비리 앞에 주저하고 망설이는 돛단배 보다는 국민들이 기대를 가득 실은 거대한 함선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의 마음’을 담은 빅데이터에 따르면, 국민의 뜻 아래 봉사하는 검찰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현재 특별수사팀은 비리의 흔적들이 둥둥 떠다니는 오염된 바다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바람을 등에 진 우리 검찰은 정의의 함선을 타고 단호하게 바다를 정화시키겠습니다.”

이제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으로봐선 국민들의 마음에 쏙드는 수사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엄격한 법적용’이나 ‘증거 부족’, ‘법감정과 법집행의 괴리’ 같은 말을 내세워도 국민들을 납득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하게도 검찰에겐 기회가 많다. 비록 수치심의 감정이 조사 대상 기관에 비해 컸지만, 그래도 검찰에 대한 가장 큰 감정은 ‘바람’(29.7%)이었으니까. 검찰이 다시 한번 국민의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

사회2부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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