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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엇박자 부총리 말도 못믿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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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설익은 정책을 입에 담았다가 이를 주워 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사전에 정치권 등과의 조율을 거치지 않는 바람에 곧바로 역풍을 맞거나, 여론을 의식해 발을 빼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여론의 동향을 살피자는 취지일 수도 있지만 정책의 신뢰성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4일 밝힌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부과 방침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지난 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도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양도소득세 개편 얘기를 꺼냈다. "1가구 1주택에도 양도세를 물리는 방안을 6월 중 세제발전심의회에 올리고 이르면 내년 법 개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4일 경제정책조정회의가 끝난 뒤 "이달 중 세발심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했다.

민주당 정세균(丁世均) 정책위의장은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고 과세의 실익도 없이 조세저항만 부를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사전에 당과 조율한 적이 없다"는 얘기도 했다.

여당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金부총리는 공식적으로 밝힌 지 만 하루가 채 안된 5일 아침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부과가) 필요하다고 결론이 나면 2년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 문제도 결정된 사항 없이 말만 무성하다. 金부총리는 4일 "법인세율 인하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내린다 해도 실제 혜택은 내후년에나 나타나지만 투자심리를 회복하는 데 효과가 있다"며 법인세 인하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시원치 않은 반응이다.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은 4일 "법인세 인하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며 앞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정책위의장도 "경쟁국들이 내릴 때에 우리도 내리면 된다"며 중장기적인 법인세 인하 방침을 밝히는 것은 좋지만 당장 낮추는 데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재경부와 협의가 시작되지도 않은 감세 얘기를 기업 관계자들 앞에서 풀어놓았다.

尹장관은 5일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구 및 인력 개발, 설비투자, 세액공제 등 올해 말로 시한이 끝나는 25개 조세감면 제도를 가능한 모두 연장하도록 관계부처와 협의해 정기국회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재경부는 이미 "각종 비과세와 세금감면 혜택을 줄이는 대신 세율은 낮춘다"는 세제개편의 기본방침을 세우고, 각부처에서 낸 조세감면 요청을 검토 중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아직 부처 간 협의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마치 조세감면이 연장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송상훈.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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