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오늘 스러져간 젊음, 그들은 강인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2002년 6월 29일 벌어진 제2연평해전을 극화한 영화 ‘연평해전’의 주연 배우들. 각각 박동혁 병장, 한상국 중사, 윤영하 소령을 연기한 이현우·진구·김무열(왼쪽부터 시계방향). [사진 전소윤(STUDIO 706)]

2002년 6월 29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3년 전 오늘 벌어진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김학순 감독)이 잔잔한 감동을 이어가고 있다. 24일 개봉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정상을 유지하며, 28일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객석에선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보탠 사람들의 명단과 함께 생존자 인터뷰를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만듦새가 다소 거칠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런 사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산화한 장병들에 대해) 미안하고 고맙다’ ‘그들의 희생을 잊어선 안 된다’는 관람평이 많다.

 영화는 제작비 문제로 한때 난항을 겪었다. 제작이 지연되며 출연을 결정했던 배우들도 하나둘 빠져나갔다. 크라우드 펀딩에 힘입어 제작이 재개된 영화는 김무열(33), 진구(35), 이현우(22)가 각각 참수리 357호의 정장 윤영하, 조타장 한상국, 의무병 박동혁 역을 맡으며 순항 궤도에 올랐다. 한·일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그해 여름, 서해에서 장렬하게 스러져간 청춘을 연기한 세 주역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인(故人)과 유가족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연기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왼쪽부터 정장 윤영하 소령 역 김무열, 조타장 한상국 중사 역 진구, 의무병 박동혁 병장 역 이현우.

 윤영하 소령을 연기한 김무열은 진짜 군인같은 외모로 속 깊고 강인한 리더를 그려냈다. 전역을 넉 달 앞둔 지난해 4월, 캐스팅 제의를 받은 그는 “출연을 결심하면서 연평해전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극 중 윤영하는 부대원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김무열은 “대원들을 사랑하고, 지켜내려는 그의 인간적 면모를 녹이려 했다”고 말했다. 윤 소령이 전사하는 장면은 그의 실제 모습을 참고했다. “전투에서 생존한 이희완 소령(당시 부정장)은 윤 소령이 죽기 직전 쓰러지지 않으려 버티는 모습이 거대한 산 같았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묵직하게 그리기 위해 전사하는 순간 고개를 천천히 떨어뜨렸다. 현장에서 특수효과 소리와 물대포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끝까지 지휘하겠다는 의지만을 되새겼다.”

 진구는 시나리오의 한 장면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전사한 한상국 중사가 가라앉은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에서 발견되는 장면이다. “한상국이 키를 잡고 서있는 상태로 죽어 있는데, 키에서 손이 빠지지 않는다. 구조대원이 울면서 ‘상국아, 집에 가자’고 하자 그제야 손이 빠진다. 실제 시신 인양 당시 그랬다고 하더라. 그 장면이 나를 끌어당겼는데, 영화에 담기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그는 총을 맞고도 조타실을 지키며 혼자 키를 붙잡고 있는 장면에 대한 소회가 특별하다고 했다. “촬영 전에는 희생정신을 멋지게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촬영하면서 한 중사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그런데도 그걸 견디며 끝까지 키를 놓지 않은 거다. 그 공포를 미처 짐작하지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이현우는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박동혁 병장은 감정의 변화가 큰 인물이어서 부담이 컸다. 특히 스트레스가 심했던 전투장면에서 울컥했다.” 고생할 게 뻔한 영화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현우는 “의미가 있는 작품인 데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이 영화를 택했다. 박동혁 병장은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다 온몸에 파편이 박힌 채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리고 83일 만에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한다. 이현우는 심성 고운 박 병장의 실제 모습을 그리기 위해 고인과 가깝게 지냈던 생존 장병 권기형(34)씨를 만나기도 했다. “박 병장은 총을 여러 번 맞고도 내색하지 않으며, 부상자들을 먼저 챙겼다. 두려워하는 선임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도 지른다. 유약해 보이지만,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강인한 인물이다. 어떻게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있겠나.”

정현목·김효은 기자 gojh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