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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메르스에 죽기 전 먼저 굶어 죽겠어요"

미주중앙

입력

지난 22일, 여느 때라면 중국 쇼핑객들로, 젊은 연인들로 북적여야 할 명동 거리가 한산하기만 하다.

불안하지만 마스크 안써
생계와 바꿀 수 없는 현실

부모님 댁에 모인 가족들
"난리판에 왜 왔냐" 타박도

"아니, 마스크 써야 하는 거 아냐?" 한국 방문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첫날, 반갑다고 건네는 인사치곤 껄쩍지근한 감이 없지 않다. '메르스 한국'에 가족과 함께 보름간 휴가차 다녀왔으니 당연한 안부(?)인사다.

갈 때부터 갈등했다. 비행기표를 해약하자니, 페널티로만 1/4이 뭉텅 날아가는 데다 언제 다시 시간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출발 날짜 이틀 전까지 고민을 거듭하다 감행했다. 30여 년 전 논산훈련소를 가던 비장함이 서리지만 아이들은 그저 먹거리.볼거리를 기대하며 붕 떠있다.

메르스가 확산 일로에 있던 지난 11일 우리는 인천을 거쳐 중국으로 향했다. 3박4일 중국여행을 포함하고도 한국직행편보다 1인당 300달러나 싼 티켓이다. 인천공항에 뉴스로만 접하던 마스크족들이 눈에 띈다. 공항 곳곳에는 손세정제가 비치돼 있어 틈 날 때마다 손을 문지른다. 베이징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성수기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하는데, 망했다고 한숨이다. 4일 내내 우리 가족은 그의 독점 서비스를 받았다.

15일 드디어 한국의 메르스와 대면을 시작했다. 입국 심사가 5분도 안 걸린다. 꼭 한국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 말고는 발길을 끊은 게다. 공항을 나서며 여차하면 쓸 생각으로 준비해간 마스크를 각자 나눠가졌다. 창원 부모님 댁에 가족들이 모였다. 이 난리판에 왜 왔냐고 한마디씩 한다. 마침 뉴스에서는 창원에 확진환자 발생에 이어 관리대상이 하루만에 100명이 늘었다고 호들갑이다.

자가격리된 확진환자 가족들이 생필품을 구하러 나오다가 동네 주민들에게 쫓겨 도로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온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어제의 이웃에게 할 짓이 아니다. 이 난리가 끝난 뒤 예전처럼 다시 얼굴을 대할 수나 있을 지.

아파트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의 동선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공고문을 붙여 놓으니, 불안감이 증폭된다. 거론된 상가는 개점휴업 상태다. 상인들은 메르스에 죽기 전에 먼저 굶어 죽을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정류장마다 빈 택시들이 줄지어 있다. 이쯤 되니 정부의 초기 미봉책이 도마에 오른다. 지난해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때 미국의 대처가 인상적으로 떠오른다. 아파트를 봉쇄한 뒤 불편함을 최소화하느라 생필품을 공급하며 안전과 지역 주민의 불안감까지 잡지 않았던가.

부산엘 들렀다. 어느 병원 입구에 마스크를 쓴 일단의 경찰들이 보인다. 확진환자가 발생한 병원이란다. 상인에게 물으니, 손님이 평소 20퍼센트 수준이란다. 마스크를 써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불안하지만 쓸 수가 없단다. 상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누가 그 가게를 들르겠냐고 한다. 생계를 메르스와 바꿀 수 없는 게 현실이니, 마음 한켠이 답답해진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자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출.퇴근길 전철은 어쩔 것인가. 마스크도 없이 전철에 올랐다. 전철 안내소마다 무료 마스크함을 비치해 두었지만 텅 빈 지 오래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족은 남산을 거쳐 한산해진 남대문시장, 명동, 인사동, 경복궁, 건대 입구를 누볐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서 말이다. 모처럼 고국에 와서 쫀쫀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작용했으리라. 다시 LA직장. 동료들이 메르스 잠복기간인 보름동안 더 쉬다 오란다. 농이 농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정말 고약한 메르스다.

글.사진=백종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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