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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책임자의 과학적 설명만이 메르스 가라앉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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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한중
전 연세대 총장·예방의학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호소에도 메르스에 대한 국민의 공포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낮은 국민의식과 유언비어가 아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과학적인 자료와 논리를 갖고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발표되는 환자 수와 사망자 수, 똑같은 예방수칙의 반복 등 단순한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이 병에 대한 공포심이 줄지 않는다. 물론 메르스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축적돼 있지 않고, 전파 방식 등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나 현재까지 보고된 학술논문과 자료, 지금까지 우리나라 상황 등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소통할 때 국민도 평정심을 찾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보건복지부와 교육 당국 간 엇박자를 낸 학교 휴업에 대해 짚어보자. 중동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은 소수의 가족들 간 감염밖에 없었다. 100만 명이 넘는 이슬람 하지순례에서도 메르스 유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같은 과학적 경험을 담은 국제학술지 논문과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환자 모두가 병원 감염이었다는 자료를 제시하고 설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면 휴교보다 아픈 학생이 등교하지 않도록 유도하자는 의견을 냈다면 교육부나 학교가 휴교 조치를 했을까. 세계보건기구(WHO) 평가단이 학교 수업 재개를 권고한 직후 슬그머니 학교에 결정권을 넘겨버린 교육 당국도 내심 방역책임자의 전문적인 의견과 판단을 원했을 것이다.

 둘째, 예측보다 환자 확산이 빨랐고 3차 감염까지 생긴 것은 판단 미숙, 늑장 대응 때문이란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방역 조치가 이렇게 달라졌기 때문에 4차 감염이 있더라도 지역사회 감염이나 대유행의 가능성은 작다는 설명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예상보다 환자 수가 많아졌다고 해도 접촉자 수(분모)를 고려하면, 또 신종플루 감염자 수와 비교해 보면 메르스 전염력은 그리 높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국은 중동의 메르스 사례를 분석한 해외 전문가들의 견해도 충분히 소개했어야 했다. 감염이 돼도 증상 없이 면역력만 갖게 되는 불현성 감염이 상당수 있었음을 보고한 학술지, 또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을 표본으로 한 항체 조사에서도 불현성 감염이 훨씬 많았다는 최근의 사이언스지 보도 등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면 막연한 공포심은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셋째, 사망률에 대한 해석도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확진환자 100명에 사망자가 8명이면 치사율 8%라고 생각하지만 확진자 중 상당수는 치료 중으로 완치될지 사망할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보고된 사망률보다는 낮겠지만 이번 상황이 종료되면 사망률은 지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높아질 수도 있다. 신종플루나 사스보다 전염력이 낮음에도 세계적으로 주의를 기울인 것은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이 국민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솔직한 해석과 전망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넷째, 왜 병원을 통해서만 감염이 이뤄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사우디에서도 2014년 큰 유행이 병원을 매개로 이뤄졌으나 아직까지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방역 당국도 여러 조사를 진행하고 있겠지만 최종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병원 내 전염의 배경을 서둘러 제시해야 후속 방역 조치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다행히 메르스는 감염되어도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역학조사의 결론이다.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날 때 바이러스의 활성도가 커지고, 심한 기침을 해야 하(下)기도에 감염됐던 바이러스의 배출이 쉬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덕분에 의료 접근이 쉽다. 감염자가 아무 병원이나 쉽게 가고 옮기는 데다 병원들은 사전에 위험 정보를 몰랐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섯째, 메르스가 병원에서 전파됐기 때문에 환자들은 아파도 병원을 안 가려 하고 병원들은 의심환자 받기를 꺼린다. 이렇게 되면 메르스 환자뿐 아니라 국민 건강 전체가 위협받게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확진환자 치료병원, 의심노출자 진료병원, 안심병원을 지정 발표했다. 이에 덧붙여 혹시 접촉자 추적관리에서 놓친 환자들을 조기 진단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고 설명해야 국민이 정부 조치를 이해하고 불편도 참아낼 것이다.

 지금까지 각종 언론을 통해 메르스를 이야기한 사람들 중엔 전문가도 있으나 방역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권위를 갖는 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혹시 자신의 주장이 틀리더라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전문성을 갖춘 책임자가 이런 설명을 해줘야 사회적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다. 우리 국민은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차갑다. 책임 있는 당국자의 논리적 설명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국민은 곧 평상심을 찾고 일상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한중 전 연세대 총장·예방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