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간격 떠난 82세 메르스 부부 … 또 임종 못한 자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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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자식으로서 무슨 말을 하겠어요.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18일 오후 82번 환자 A씨(82·여)의 장남 B씨(59)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던 어머니가 숨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이날 오전 1시10분쯤 상태가 급속히 악화해 사망했다. 하지만 장남을 비롯한 3남1녀의 자녀 중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자녀들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B씨는 “어머니는 지병인 고혈압 말고는 특별히 아픈 데도 없었다. 입원 후에도 매일 수차례씩 통화하며 안부를 물었는데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어제저녁에도 전화해 ‘어머니’라고 부르니 ‘응’ 그러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지난 3일 숨진 36번 환자(82)의 부인이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부부가 함께 사망한 건 지난달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뒤 처음이다. A씨는 건양대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하던 중 16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A씨는 지난 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충남대병원으로 옮겨졌다. 고령이었던 그는 이미 폐렴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A씨 남편은 지난달 9일 지병이 악화되면서 건양대병원에 입원했다. A씨는 줄곧 병실에 머물며 남편을 간호했다. 간호사들이 “부부 금실이 좋다”고 하면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겠느냐”며 웃곤 했다. 문제가 생긴 건 지난달 28일. 16번 환자가 같은 병실에 들어오면서였다. 이 환자는 대전대청병원(지난달 22~28일)과 건양대병원(지난달 28~30일)을 거치며 대전에 메르스를 확산시킨 장본인이다.

 지난달 31일 16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 A씨 부부는 병원 내에 격리됐다. 3남1녀 중 장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족에게도 자가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그런 가운데 천식과 세균성 폐렴을 앓던 남편은 지난 3일 끝내 숨졌고 이튿날 메르스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장남을 비롯해 격리된 자녀들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병원에 코호트 조치가 취해지면서 출입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함께 격리됐던 A씨가 유리창 너머로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고 한다. 당시 A씨는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과 같은 병원에 머물렀다. 장남은 화장한 아버지의 유골을 대전의 한 납골당에 보관했다. 어머니가 퇴원하고 동생들의 격리도 풀리면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B씨는 “부모님은 100원짜리 동전도 허투루 쓰지 않을 정도로 늘 검소하게 생활하셨다”며 “그럼에도 손주들에게는 5만원짜리 지폐를 선뜻 쥐여줄 정도로 손주 사랑이 지극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부모님은 60년을 함께 살면서 늘 서로를 아끼고 의지해 오셨다”며 “4남매를 키우느라 그토록 고생하셨는데 효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셨다”며 울먹였다.

 보건당국은 관련 절차에 따라 A씨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족에게 인계할 예정이다. B씨는 “보름 새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임종도 지키지 못했으니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겠느냐”며 “두 분이 편히 가실 수 있도록 조만간 합동 장례를 치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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