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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턴기자의 ‘현장에서’] 한 초등학생 어린이가 일깨워준 국회의 역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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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인턴기자.

“어디까지 오셨대요? 의원님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있잖아요.”

지난 15일 오전 10시 15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실. 업무보고를 하러 나온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와 공무원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지만 회의는 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의원들 상당수가 회의장에 도착하지 않아 15분 넘게 회의가 지연되자 기재위 관계자가 의원 비서에게 재촉을 했던 것이다.

다음날인 지난 16일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용인 성산초등학교 6학년 지효은 어린이가 발언대에 섰다.

2008년 제정된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법’이 올 1월부터 시행되면서 안전검사에 통과하지 못한 전국의 1581개 놀이터가 폐쇄된 채 방치돼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하자 “하루 빨리 어린이 놀이터를 수리해서 안전하게 놀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지양이 옆에 선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에게 “해요?”라고 묻더니 천천히 발언을 시작하자 국회 기자실 일부에선 “저 똘망똘망한 어린이는 누구냐”며 웅성거리기도 했다.

메르스 사태와 국회법 개정안 등 ‘빅 이슈’가 연일 점령한 정치권에 “마음놓고 뛰어놀 공간이 필요하다”며 등장한 어린이는 국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고장난 놀이터를 이용하다가 다친 적이 있다고 했다”며 어린이들의 고충을 말하는 모습에 국회가 돌봐야 할 국민이 지양 같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우리 주변에서 국회가 법으로, 관심으로 챙겨야 할 사안이 너무도 많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인턴기자로 국회에 와서 본 국회의 모습은 그동안 기대했던 그런 국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의원들의 잦은 지각과 결석으로 상임위 시작이 15분씩 늦어지는 건 부지기수였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는 담당 공무원을 불러다 비판을 쏟아내다가도 본인의 질의 순서가 끝나면 곧장 일어나서 회의장을 떠나버리는 의원도 있었다.

시민들을 만나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가뭄에 힘겨워하는 농민이 대책에 관해 묻자 한 의원은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자, 다음 일정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하고”라며 말을 끊었다.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이야기를 듣고 법안에 대해 논하는 자리보다 더 중요한 일정이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진지하게 국민 생활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필요한 법안을 마련해야할 의원들은 저마다 바쁜 일정으로 국민과의 대화, 법안에 대한 고민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국회로 오기 전 지양은 1년 간 친구들과 함께 아동의 생활 속 환경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해 조사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국회가 국민을 위한 법을 마련하면서 그만큼 충실하게 듣고 고민한 적이 많을까.

한 초등학생의 발걸음이 우리 국회가 해야 할 일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셈이다.

배지원 대학생(서강대 철학과) 인턴기자 jiwon12119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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