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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는 걸레질 계속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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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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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63) 검찰총장이 ‘유탄’을 맞았다. 황교안 후임 법무장관 선정에서 비롯됐다. 하마평 대부분이 김 총장의 사법시험 후배들이다. “후배가 법무장관에 임명되면 김 총장이 옷을 벗을 것”이란 게 정치적 해석의 요지다. 논란이 커진 건 김현웅(56) 서울고검장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부상하면서다. 그는 김 총장보다 사시 합격이 2년 늦다. 검찰을 떠난 인사들이 장관 하마평에 오른 것과 차원이 다르다. 김 총장의 지휘를 받다가 지휘를 하게 되는 ‘역전’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는 1979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전남 고흥-보성에서 옥중 당선된 김수(金守)씨의 아들이다. 김수씨는 선거운동 와중에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당선 후 공화당에 입당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정치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 고검장을 차기 법무장관 후보로 마음에 두게 된 것도 대를 이은 인연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느닷없이 불거지는 김 총장 퇴진론의 배경이다. 김 총장의 임기는 올 12월 1일까지다. 아직까지 5개월 이상이 남았다. 하지만 차차기 총장과 다음 대선의 함수관계가 맞물리면서 정치적 계산이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김 총장 임기가 끝나고 차기 총장이 근무연한을 무사히 마칠 경우 차차기 총장을 대선 와중에 임명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다. ‘대선관리의 어려움’이라는 정치적 배경에서 김 총장 밀어내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퇴진으로 김 총장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현역 고검장이 법무장관에 임명된 사례는 97년 김영삼 정부 때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은 한 기수 아래인 김종구 서울고검장이 법무장관에 임명되자 옷을 벗었다. 그 때문에 검찰 내 ‘빅 마우스’들은 김 총장의 중도 낙마를 점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김 고검장 등 검찰 후배들의 ‘꽃가마’는 김 총장의 ‘낙화(落花)’로 이어질까. 법무장관 후보자가 발표되지 않은 현 상황에선 정치적 소설에 불과하다. 김 총장도, 검찰 내부 간부들도 ‘총장 임기제’를 강조하고 있다.

 불교에 해박한 김 총장은 이 같은 기류를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최근 사석에서 ‘주리반특(周利槃特)’의 사례를 들었다고 한다. 주리반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잊어버리는 ‘바보 같은 제자’였다. 이에 부처님은 “너는 먼지를 쓸고, 떼를 닦으라”는 불진제구(拂塵除垢)의 가르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걸레질을 통해 집착과 번뇌와 속박을 깨끗이 쓸어내고 해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그저 걸레질만 열심히 할랍니다. 내가 할 일이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김 총장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임기 때까지 ‘걸레질’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일선 검사들의 반응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였다. 사법시험 후배기수가 장관이 되는 것과 검찰총장 임기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 법무부의 산하기관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이 정부 들어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파문으로 중도하차한 마당에 또다시 검찰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경우 검찰은 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김 총장을 제외한 18명 중 6명만이 임기를 채운 것은 검찰의 ‘흑(黑)역사’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가 차기 법무장관의 뚜껑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정치적 역풍이 메르스와 함께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로 스며들 경우 그 누구도 김 총장의 거취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란 대의명분이 ‘효율적 국정운영’이란 정치적 현실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 주목된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처리되고 후임 법무장관이 발표되면서 서초동 검찰청사는 또 한번 정치적 파랑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총장은 연말까지 계속 걸레질을 할 수 있을까.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