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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메르스와 경제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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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다. 요즘 금융가에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을 경제위기에 빗대는 이들이 꽤 된다. 돌아보니 2009년 신종플루 때도 그랬다. 나 역시 ‘신종플루와 경제위기’란 칼럼을 쓰기도 했다. (2009년 9월 15일자) 6년이 지났지만 교훈을 얻은 건 없었다. 실패에서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게 인간사인 듯하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그러려니 할 수만은 없다. 실패가 진짜 교훈이 될 때까지 끝없이 돌아봐야 한다.

 메르스와 경제위기는 많이 닮았다. 첫째, 쉽게 전염된다. 메르스는 말할 것도 없지만 경제위기도 만만찮다. 뱅크런이 대표적이다. 어느 은행이 망한다 싶으면 모두 몰려간다. 결국 멀쩡하거나 안 망해도 될 은행까지 망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말한 ‘자기 실현적 예언’이다.

 둘째, 모를 때 공포가 커진다. 어느 은행이 망할지 모르면 무조건 돈을 빼고 본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 모든 은행의 예금이 일거에 빠져나갔다. 정부가 부랴부랴 지급보증을 하고, 우량·불량은행을 골라내겠다고 하자 겨우 진정됐다. 그래도 어느 은행의 지급결제비율(BIS)이 기준에 미달한다는 얘기가 돌면 할머니·할아버지까지 통장을 들고 와 예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메르스는 어떤가. 어느 병원에 확진환자가 있는지 모르니 무조건 병원에 안 가고 본다. 어느 병원에 환자가 생겼다거나 들렀다는 소문이 돌면 그 병원에는 발길을 끊는다. 급기야 지하철·버스·열차까지 승객이 준다. 메르스 환자가 타고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셋째, 졸면 죽는다. 외환위기는 여러 번 징조가 있었다. 금융개혁과 구조 개혁에 대한 요구가 국내외에서 빗발쳤다. 은행·종금사의 단기 외채에 대한 경고도 수없이 되풀이됐다. 어느 것 하나만 해냈어도 외환위기까지는 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쟁(政爭)에 빠진 정치권과 정부는 무능·무기력했다. 나라 전체가 졸고 있었던 셈이다. 메르스도 여러 차례 차단 기회가 있었다. 공항 검역창구에서 첫 번째 환자에게 물어만 봤어도, 환자 자신이 메르스에 대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평택의 병원에서 의심을 했었어도, 삼성병원 확진 후 차단만 했어도…. 어느 한 번만 제대로 했어도 여기까지는 안 왔을 것이다. 나라 전체가 졸았던 탓에 재앙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넷째, 언제든 재발한다. 바이러스는 진화한다. 지능적이고 교활하다. 모양과 이름을 바꿔 인간을 숙주 삼는다. 인간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속도보다 늘 빨랐다. 300년에 걸쳐 유럽 인구를 반 토막 낸 흑사병 바이러스도 저절로 사라졌을 뿐 인류가 병을 퇴치한 것은 아니다. 다음엔 다른 이름으로 나타날 것이다. 경제위기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다. 탐욕은 지능적이고 교활하다. 금융위기·외환위기, 미국발·유럽발·신흥국발… 모양과 이름만 바꿔 인간을 숙주 삼는다. 지금은 지구촌 곳곳의 돈과 사람이 섞이는 글로벌 시대다. 바이러스와 경제위기를 원천봉쇄할 ‘신의 한 수’는 없다.

 다섯째, 과잉 논란을 부른다. 외환위기 땐 공적자금 과잉 투입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64조원이 많네 적네 하더니 안 줘도 될 곳까지 줬다며 정쟁 대상이 됐다. 2차 공적자금 조성이 늦어지고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데는 이런 과잉 논란이 한몫했다. 메르스를 놓친 것도 과잉 논란 탓이 컸다. 과도한 경제 위축과 공포를 조장할 수 있다며 정부의 누구도 신속·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복기해보자. 그나마 1차 공적자금 투입이 성공했던 건 신속·충분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과잉 논란을 잠재운 건 ‘소방수론’이었다. 화재가 났는데 양동이로 물을 세서 부을 수는 없다. 일단 확 쏟아부어야 한다. 잔불을 남기면 다시 타오른다. 불 끄다가 소방관이 실수할 수도 있다. 화단도 밟을 수 있고, 그러다 꽃이 꺾이기도 한다. 그걸 뭐라고 탓해선 안 된다. 책임 져라 하면 아무도 다음엔 불을 끄려고 나서지 않게 된다. 지금 메르스를 진압할 소방수는 누구인가. 과연 있기는 하나.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