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국회 폐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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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11대 국회가 새해예산안의 표결통과와 함께 사실상 막을 내렸다.
앞으로 의사일정은 10여일이 남았지만 의원들의 마음이 이미 표밭에 있어 1백20여건의 의안은 졸소 처리되거나 상당수는 자동 폐기될 것이다.
입법회의라는 과도적인 기구에서 마련한 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탄생한 11대 국회는 「새정치」 「새의정상」의 구현이란 책무를 걸머지고 출범했었다.
정치형태의 구습을 철저히 청산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 새의정상의 정립이란 구호는, 그러나 11대 국회 막바지에 와서도 별다른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정치인들의 자세는 지난 4년 동안 과연 과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국회를 운영하는 방법 또한 과연 대화와 토론을 통해 폭넓은 이해와 의견을 수렴하려고 했는가. 국회는 행정부의 감시자로서 기능을 다했다고 보는가. 이런 여러 가지 물음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새해 예산안만 해도 국회의 심의태도는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선거를 앞둔 막바지 회기라는 점을 충분히 감안한다해도 정부 원안대로 무수정 통과시킨 과정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 알다시피 예산을 따지는 일은 국회의 기능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런데도 정치적인 줄다리기 속에 10여일 동안 국회가 공전하다가 통과에 필요한 요식행위만을 거쳐 처리하고 만 것이다.
새해예산은 우선 그 규모부터가 방대한데 손대지 않고 통과시킬 만큼 완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삭감하자고 나선 야당의 공세도 문제지만 정부·여당간에 충분한 협의가 있었으니 원안대로 통과시켜도 무방하지 않겠느냐고 본 여당쪽 자세에도 문제는 있다.
출범당시의 특수상황으로 80%이상이 초선의원으로 짜여진 11대 국회가 경험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와 미숙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로 맡겨진 기능을 다하려 한 것을 평가하는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여야간에 극한적인 대립이나 충돌없이 의사를 운영해 봤다는 것은 과거에 별로 볼 수 없던 일로서 효율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일면 비활성적이고 따라서 덜 철저했다는 인상 또한 면키 어렵다고 하겠다.
여야의 협조는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히 짚고 따질 것을 외면하는 국정의 방관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11대 국회는 3당 정치가 이루어진 우리나라 초유의 의회였다는 점에서 한국정당정치에 새로운 실험을 하나 추가했다.
한국에 정당정치가 등장한 이후의회는 주로 여당과 제1야당을 중심으로 한 양당정치의 특색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는 전 정권하의 여당의 후신이라 할 「국민당」이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제3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고 하겠다.
이것은 다당제를 지향하는 우리정당정치에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11대국회의 업적 중 돋보이는 것은 지방자치제 실시 일정의 제시라 하겠다.
지자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민주정치의 지방확산으로 상향식 정치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정치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지자제는 또 능률적 민주적인 행정발전을 수반한다는 점에서도 민주주의의 뿌리가 약한 우리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민주제도인 것이다.
이제 11대 국회가 못다 한 일은 12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11대 국회를 마감하면서 모든 정치인들은 앞으로 구현되어야할 새의정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냉철히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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