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일본 국가적 책임 인정’ 놓고 막판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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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며 협상의 막바지 단계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12일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

 “쉽지않은 협상이라서 천천히 가다가 최근 들어 조금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 15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협의와 관련해 잇따라 “진전”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이 “상당한 진전”을 말한 지 사흘만에 윤 장관은 “의미있는 진전”을 말했다. 윤 장관은 “적절한 시점에 협의가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현재의 국장급 협의를 더 고위급으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위안부 협상에 낙관론을 편 건 이례적이다.

 반면 일본은 온도 차가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5일 정례 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취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언급을 피하겠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의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진전’에 대한 해석 차는 현재 양국이 막판 줄다리기 중 임을 시사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홉개를 풀었어도 나머지 한 개를 못 풀면 타결이 안되는 것”이라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본의 외교 소식통도 “밀도있는 협의가 진행 중이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협상에 관여하고 있는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국은 사죄의 주체와 방식, 금전적 배상 혹은 보상 방법 등을 놓고 의견 차를 좁혀가고 있다고 한다. 협상에 참고가 되는 것은 이른 바 ‘사사에 안’이다. 2012년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현재 주미 일본대사) 당시 외무성 사무차관이 방한해 제시한 안이다. 일본 총리의 사죄편지를 주한 일본 대사가 직접 피해자들에게 전달하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인도적 조치를 위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한국의 기본입장은 ‘사사에 안+α(알파)’다. 사죄 표현에서 일본 정부가 밝혀온 것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두 나라 간 협상에서 최대 난제는 일본의 국가적 책임 인정이다. 법적 배상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일본은 양보할 수 없다는 태도다. 한국 측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군 혹은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동원했다는 사실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양국이 외교적으로 합의한다고 해도 끝나는 게 아니다. 더 어려운 자국 내 여론 설득이 남아있다. 정부는 일본과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기준이라고 강조해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는 “고노담화에서 위안부의 강제성은 인정했지만, 일본군의 계획 하에 했다는 내용은 없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계획적으로, 강제적으로 위안부를 동원했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대 이원덕 일본학연구소장은 “양국 지도자가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하는 문제”라며 “이번에 박 대통령이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이 일본에 가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도 한일관계를 풀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동서대 조세영(전 외교부 동북아국장) 특임교수는 “윤 장관이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여러 의견을 교환하면 그 것 자체로도 성과”라고 말했다.

도쿄·워싱턴=오영환·채병건 특파원,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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