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감독, 당신이 던져봐” … 돌직구 날린 추신수,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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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끝내기 안타를 때린 뒤 감독과 포옹하는 추신수. [AP=뉴시스]

올 시즌에 앞서 메이저리거 추신수(33·텍사스)는 제프 배니스터(50) 신임 감독에 대해 “열정적인 분이다. 올해 처음 감독을 맡다 보니까 베테랑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며 “난 학창시절부터 미국에 와서까지 감독님과 (사이가) 나빴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불과 3개월이 지나 추신수는 배니스터 감독과 정면 충돌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선수의 대립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추신수-배니스터의 갈등은 흔한 사례와 다르다.

 지난 11일(한국시간) 오클랜드와의 원정경기. 8회 1사 1루에서 오클랜드 벤 조브리스트의 우전안타 때 1루주자 조시 레딕이 2루를 거쳐 3루로 향했다. 우익수 추신수는 타구를 잡아 3루로 송구했다. 3루수 조이 갤로는 레딕을 태그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공을 잡자마자 2루로 송구했다. 그러나 송구가 빗나가 레딕이 득점했다. 이어 후속타 때 조브리스트까지 홈을 밟아 오클랜드는 4-4 동점을 허용했다. 텍사스는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맞고 4-5 역전패를 당했다.

 패배보다 쓰라린 건 내분이었다. 배니스터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추신수를 세워놓고 “왜 중계플레이를 하지 않고 3루로 송구했느냐”며 다그쳤다. 기자회견에서도 “추신수가 타자주자의 2루 진루를 막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말했다. 추신수도 배니스터 감독에게 “나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가. 글러브를 줄 테니 당신이 직접 해 봐라”며 거세게 맞받았다.

 류현진(28·LA 다저스)의 동료 야시엘 푸이그(25)가 루키 시절 제멋대로 플레이를 하자 후안 유리베(36) 등 베테랑 선수들이 그를 자주 꾸짖었다. 빅리그의 질서이자 전통이다. 그러나 감독이 빅리그 11년차 베테랑과 말싸움하듯 대립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에서 감독을 헤드코치(head coach)가 아니라 매니저(manager)로 부르는 건 관리자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의미다. 추신수는 송구 실수를 했고, 배니스터는 작은 문제를 키웠다. 팀을 제대로 관리(manage)하지 못한 것이다.

 선수와 감독의 대결은 대체로 선수가 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배니스터 감독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텍사스의 역전패는 수많은 이유들로 만들어졌다. 굳이 8회를 승부처로 꼽는다 해도 송구 실책을 범한 건 갤로였다. 게다가 인터뷰에서 자기 팀 선수를 직접 겨냥한 건 감독답지 못했다. 피츠버그의 벤치코치로 있다가 올해 텍사스 감독이 된 그는 승패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도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사고를 쳤다가 곧바로 추신수를 찾아가 사과했다.

 지금까지의 여론은 추신수의 편이다. 그러나 감독과 공개적으로 언쟁한 사실은 그에게 득될 것이 없다. 시즌 초부터 추신수는 타순을 자주 바꾸고 선발 라인업에서 갑자기 빼는 배니스터 감독의 용병술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1일 사건은 둘의 감정이 쌓인 끝에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튿날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플레이를 펼치든 그를 믿는다”고 ‘립 서비스’를 했다. 갈등이 빠르게 봉합된 것 같지만 상처가 치유된 건 아니다. 두 번째 충돌이 일어난다면 배니스터 감독도, 추신수도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진짜 화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이뤄진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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