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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도박’ 틀 깨고 지능스포츠로 발돋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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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해 방영된 JTBC 미니시리즈 ‘밀회’에서 마작(麻雀)은 상류층의 게임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회에서 돈세탁과 비자금 관리를 맡았던 주인공 오혜원(김희애 분)과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서 회장은 마작을 하며 게임에 대한 것인지, 닥쳐오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한 것인지 모를 대화를 나눈다.

 “이건 어떨까요.”(혜원), “받아주마.“(서 회장), “장렬하시네.”(혜원), “이게 아름다운 것 아니냐.”(서 회장), “지켜야 아름답죠. 저는 개죽음 싫던데.”(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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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대중 드라마 소재로 쓰일 정도로 마작은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올가을 한국에 세계에서 ‘한 마작’ 한다는 선수들이 모인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마작조직(WMO·世界麻將組織)은 제4회 세계 마작 선수권 대회 및 마작 문화 교류 대회를 오는 11월 11일부터 닷새 동안 제주도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중국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권 등에서 3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일종의 ‘마작 월드컵’이다.

 중국에선 선수 선발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달 말 시안(西安)을 시작으로 항저우(杭州), 윈난(雲南)성 등에서 선발대회를 치렀다. 한국 대표의 선발은 WMO 한국 조직인 ‘세계 마작조직 아시아 지능 마작 협회’에서 맡는다.

 WMO는 마작의 세계화와 지능스포츠화를 목표로 2005년에 탄생했다. 2년 뒤인 2007년 1회 세계 마작 선수권 대회를 중국 쓰촨(四川)성 어메이산에서 열었다. 2010년에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2012년에는 중국 충칭(重慶)의 첸장(黔江)에서 각각 2, 3회 대회를 개최했다. 개인부와 단체부로 나눠 진행했는데, 지금까지는 중국이 모두 1등을 석권했다. 3회 대회엔 베이징대·칭화(淸華)대·난카이(南開)대 등 중국 명문대생들이 팀을 이뤄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점차 일본·오스트리아·프랑스·네덜란드 선수들도 강세를 보이는 추세라고 한다.

 4회 대회를 제주에서 개최하게 된 이유에 대해 WMO는 “한·중 교류를 증진시키자는 취지에서 한국을 개최지로 선정했다”며 “특히 제주는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라 마작을 세계화하자는 행사 취지에도 적합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 공동주관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득아의 이수철 대표변호사는 “이번 대회를 통해 중국 마작 문화에 대한 한국의 이해가 높아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의 존중과 인정도 깊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WMO는 세계에서 마작을 즐기는 인구를 6억 명으로 추산한다. WMO 관계자는 “2008년 기준으로 브리지, 바둑, 체스, 다이아몬드게임, 장기 등 5개 종목에 참여하는 인원수가 7억 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마작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즐기는 지능스포츠”라고 설명했다.

 마작은 보통 네 명이 함께 하고 144개의 패를 사용한다. 숫자·문자·꽃이 그려진 패를 얻고 버리면서 14개의 패를 이용해 특정한 조합을 먼저 만들어내면 이기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마작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그중 명나라 때 만들어진 마댜오(馬吊)라는 ‘팻놀이’가 변형된 것으로, 청나라 초기에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규칙과 내용을 갖추게 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한국에서 지역별로 ‘고스톱’의 규칙이 다르듯, 중국도 지역마다 마작 규칙이 다르다. 이에 중국 정부는 1998년 마작을 공식 체육 종목으로 인정하면서 자국내 표준 마작 규칙을 만들었다. 국제 경기 규칙은 WMO가 2006년 정했다.

 한국에 마작이 전파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전후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하에서는 일본식 마작이 널리 퍼졌다.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는 외계에서 온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이 경성(서울의 옛 명칭)에서 마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에서 마작은 게임이나 놀이보다는 도박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채만식은 1938년 발표한 장편소설 『태평천하』에서 주인공 윤 영감의 아들을 ‘마작과 같은 노름’에 빠진 방탕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서 한동안 마작이 다른 게임만큼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이렇게 도박으로 인식된 탓이 크다.

 하지만 본토인 중국에서 마작은 대중적이고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의 일종이다. ‘중국인 열 명 중 아홉 명은 마작을 할 줄 알고, 나머지 한 명은 마작을 구경 중’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WMO 측은 “4회 대회를 제주에서 여는 데는 한국 사회에서 마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밝혔다.

 서구 국가에서도 마작은 도박이 아닌 고급 사교 게임으로 보는 시선이 더 많다. 서구에 마작이 전해진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라고 한다. 1926년 발표된 유명 추리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도 등장인물들이 파티에서 마작을 즐기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공자학원의 한 교사는 “유럽에서 중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마작패를 보고 관심을 보여 수업 시간에 마작을 강의한 적이 있다”며 “유럽에선 마작을 일종의 동양 문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마작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라고 한다. 92년 한·중 수교 등을 계기로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민간 교류가 활발해졌을 때다. 비슷한 시기 일본과 중국에서 마작을 소재로 한 만화 등이 인기를 끈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국내 최초의 마작 전문 카페를 연 홍태웅씨는 “최근 카페를 찾는 이들은 대학생이 30~40% 정도로 가장 많지만, 중·고생도 있고 중장년층도 종종 온다”며 “마작은 돈내기와는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왕웨이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S BOX] 숫자·문자·꽃 패 144개 … 14개로 특정 조합 만드는 보드게임

마작은 4명이 함께 즐기는 일종의 보드게임이다. 중국 마작에서는 144개의 패를 쓴다. 패는 보통 상아나 골재에 대나무를 붙여 만든다. 숫자가 새겨진 수패, 문자가 새겨진 자패, 꽃이 새겨진 화패 등으로 나뉜다.

  마작을 하는 테이블 가운데에 패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패산’이라고 한다. 각 선수는 패산에서 새로 패를 하나 뽑은 뒤 자신의 패에서 하나를 버리며 게임을 진행한다. 자신 앞에 있는 14개의 패로 특정 조합을 만드는 것이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다.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마작에도 ‘족보’가 있다. 세계마작조직(WMO)이 정한 국제경기 규칙에 따르면 점수를 낼 수 있는 패의 조합은 81가지이며 만들기 어려운 조합일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다. 점수 등급은 12개다. 88점, 64점, 48점, 32점, 24점, 16점, 12점, 8점, 6점, 4점, 2점, 1점 등이다. 가장 높은 점수인 88점을 얻을 수 있는 족보는 7개 조합이다. 화투의 ‘섰다’로 치면 ‘38 광땡’, 포커로 치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에 해당한다.

 7개 조합 중 하나인 다쓰시(大四喜·그림)를 예로 들어 보자. 자패 가운데 방향을 나타내는 동(東)·서(西)·남(南)·북(北)이 새겨져 있는 패를 ‘풍패’라고 한다. 풍패는 동·서·남·북 패당 각 4개씩 16개가 있다. 이 중 3개씩 12개를 한데 모으고 별도로 같은 문양의 패 2개를 갖추면 다쓰시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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