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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남에서 온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최근문화계에는 일종의 탈중심화 현상이 확산일로에 있다. 5월 세대의 등장과 함께 가속화된 이 현상은 현단계에서 깊고 무거운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한편 그것이 가파른 세대논쟁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변혁 가능성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전제되지 않을 때 우리는 자칫 흑백논리에 주저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인들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큰만큼 선배작가들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는 것이다.
이활철의 중편 「남에서 온 사람들」(14인 신작소설집 『지알고 내알고 하늘이 알건만』·창작과 비평사·1984년9월)은 최근 우리 소설계가 거둔 수확의 하나다.
지난해에 발표한 「세 원형소묘」(『실천문학』 제4권)와 연결되는 이 중편에서 작가는 6·25를 새로운 각도에서 포착하고 있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던 l950년8월 중순의 원산, 정치 일변도의 이북교육에 신물이 나있던 주인공 「나」는 뒤늦게 인민군에 입대하여 공교롭게도 이남에서 올라온 일단의 의용군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정치교양 임무를 맡게되는데, 작가는 이 기묘한 남북대면을 전통적인 사실주의 수법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그 소재의 특이성만으로도 신선하다.
더구나 이 작품에는 작가의 체험이 밑바탕에 짙게 깔려있다. 그의 자전적 수필 「인민군 정찰중대에서 부산 피난까지」를 읽어보면 이 작품속에 나오는 김정현·장세운·장세경 등이 모두 실제인물임을 확인하게 되니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6·25 당시 남북한 사회와 한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는 김정현이라는 철딱서니 없는 소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남로당원 갈승환과 김석조의 갈등을 축으로 전개된다.
갈승환과 김석조는 모두 노동자 출신의 당원인데 두사람이 국회의원의 아들 김정현을 보는 태도는 대척적이다. 갈승환이 김정현을 경멸·증오한다면, 김석조는 김정현의 백치상태를 연민 어린 눈길로 감싸는 것이다.
김석조의 태도는 무엇인가? 불교문자에 동사섭이 있다.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사이의 종속적·일방적 관계를 거부하고 나아가서는 그 분리자체를 제거하려는 이 문자의 정신은 인간의 변혁 가능성에 대한 눈물겨운 믿음에 기초한 혁명적 교육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항상 당원임을 내세워 주위사람과 담을 쌓고있는 갈승환은 일종의 중심부망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지. 미워해야 할 것은 인간이 아니고 제도라는 사실을 몰각하고 있는 갈승환 같은 인물은 전위당 이론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위험을 한 단면에서 보여준다. 그리하여 갈승환은 일선으로 가기 직전 평양으로 뽑혀가고, 김석조는 일선 전투에서 전사하고, 김정현은 후방 재교육으로 떠나는 결말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작가는 이처럼 김석조라는 허구적 인물을 통해서 6·25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갈승환에 대한 반발이 너무 심정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이는데 사실 이 의무은 나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최원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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