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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FIFA 개혁 ‘1선수 1표’로 이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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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란시스코 토로
언론인

철옹성 같던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을 사임시킨 미국 사법당국과 스위스 경찰의 수사로 켜켜이 쌓여온 FIFA의 적폐가 민낯을 드러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썩은 FIFA의 비리 구조는 지도부 몇 명 잘라낸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블라터가 감옥에 간다고 해도 조직의 뿌리까지 환골탈태되지 않는 한 새 지도자 휘하에서 FIFA의 부패는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1국 1표’라는 FIFA의 의사결정 원칙이다.

 이 원칙 덕분에 약소국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독일의 축구 인구는 부탄보다 5257배 많지만 투표권은 두 나라 똑같이 1표다. 이런 비합리적 원칙을 교묘히 활용해 블라터는 글로벌 축구판을 쥐락펴락했다. 막대한 돈을 들여 약소국마다 축구장이나 관련 인프라를 세워주며 충성스러운 부하로 포섭했다. 아프리카의 소국 코모로에 수십만 달러를 들여 축구장을 지어줬고, 태평양 섬나라 타히티에는 물리치료센터를 세워줬다. 그 결과 FIFA 총회에서 이 나라들은 블라터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블라터의 장기 집권은 순전히 이렇게 약소국들을 매수해 지지를 얻어낸 덕분이다. ‘1국 1표’ 원칙이 유지되는 한 블라터가 사라져도 제2, 제3의 블라터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게 뻔한 이유다.

 FIFA가 제대로 개혁되려면 ‘1국 1표’ 원칙부터 바꿔야 한다. 회원국이 축구에 기울이는 정성을 기준으로 의사결정권을 차등 배분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선수 1명당 1표’ 원칙을 채택하면 된다. 즉 아마추어와 프로를 합해 회원국 축구연맹에 공식 등록된 선수 숫자에 따라 투표권을 배분하는 것이다. 인구수에 따라 주별로 선거인단 숫자를 차등 배분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방식과 흡사하다. 모든 주가 투표권을 갖되 인구가 많은 주가 더 많은 투표권을 갖는 원칙을 FIFA에도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축구 경기가 많이 열리고 선수층도 두꺼운 축구 애호국들 쪽으로 FIFA의 무게중심이 이동할 수밖에 없다.

 축구 대국이 밀집한 유럽에만 유리할 것 아니냐고? 아니다. 축구연맹에 등록된 선수가 140만 명에 달하는 남아공은 등록선수가 8385명뿐인 라트비아보다 175배나 큰 투표권을 갖게 된다. 미국 사법당국의 FIFA 수사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84만7000명의 축구선수가 등록된 러시아가 선수 2200명의 쿠웨이트와 동일한 투표권을 갖는 불평등을 바로잡을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환영할 것이다. 선수 숫자만큼 투표권을 갖는 제도가 시행되면 관료주의의 극치였던 각국 축구연맹 간부들의 일처리도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최대한 많은 선수를 끌어모으고 그들이 축구를 계속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될 것이다. 외면받아온 여자 축구 리그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얻게 될 것이다. 블라터 수사와 별개로 ‘1국 1표’ 악법은 진작 바뀌어야 했다. 축구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창출하는 거대 산업이다.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각국 시민과 선수들이 이 거대한 잔치판에 제대로 지분을 인정받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축구연맹은 철밥통 의식에 절어 있는 관료들 배나 불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다. ‘선수당 1표’ 원칙은 축구를 가장 열심히 성원하는 나라가 FIFA의 의사결정에 힘을 발휘하게끔 해준다. 선수당 1표 원칙 아래에선 독일 등 축구 시장 규모가 큰 12개국의 투표권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FIFA 회원국 209개 나라 가운데 전 세계 축구인구의 2.2%만을 차지하는 105개 나라가 투표권의 50%를 가져가는 현재 구조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수용하게끔 FIFA를 설득하는 건 대단히 힘들 것이다. 뼛속까지 부패에 젖은 FIFA는 미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벌이는 와중에도 블라터 편을 들기 바빴다. 또 105개 축구 소국들의 저항도 엄청날 것이다. 손바닥만 한 면적의 쿠라사오 섬 축구연맹이 브라질과 동일한 권력을 누리는 FIFA에서 이들 소국이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게 만들 방법은 사실상 없다.

 FIFA가 끝까지 개혁을 거부하면 극단적인 해결책이 필요할지 모른다. 핵심 회원국들이 FIFA를 탈퇴해 ‘선수당 1표’ 원칙을 채택한 새 글로벌 축구조직을 출범시키는 것이다. 너무 급진적인 주장이라고? 테니스의 경우를 보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아마추어 육성에 집중하는 국제테니스연맹의 일처리 방식에 분노한 프로선수들이 프로테니스협회를 만들면서 국제테니스연맹은 이름뿐인 조직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사랑해 마지않는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1국 1표’ 원칙 아래 블라터 같은 부패인사들에게 장악된 현재의 FIFA 체제에선 두 번 다시 월드컵 같은 대형 경기가 열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 세계 축구 대국들과 선수들이 한목소리로 “FIFA가 바뀌지 않는다면 탈퇴하겠다”고 요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개혁의 길이다.

프란시스코 토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