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삼국」BC 1세기 이전에 형성|고고학자·문헌사학자들 모여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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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고학자들과 문헌사학자들이 삼국형성의 문제를 놓고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대토론을 벌였다. 한국고고학연구회(회장 한병삼)주최로 지난 10∼11일 춘천 한림대에서 열린 제8회 한국고고학 전국 대회의 공동주제는 한국사 최대쟁점의 하나인 「삼국형성의 제 문제」. 한국고대사 연구가 당면한 문헌사학의 한계를 최근 고고학의 성과로 풀어보고자 모색한 자리였다.
이날 먼저 제기된 문제는 당시 국가의 개념문제.
문헌사학의 입장에서 발표한 이기백 교수(서강대)는 『일정한 영역 안에서 정치적 권위가 인정되는 왕자가 존재하면 국가로 보아야 한다』며 삼국이전 삼한 78국의 「작은 나라」들을 삼국건국의 제1단계로 주목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도 『삼국지』동이전에서 이들을 모두 「나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초기 「조그만 삼국」의 형성은 건국설화의 형태로 남아있다면서 앞으로 여기서 역사적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구려의 건국 연대는『삼국사기』의 기록(BC1세기)보다 올려야 되고 남쪽에서도 백제·신라를 최초의 국가형태로 단정하는 것은 속단이라고 주장, 종래의 국가형성의 연대를 크게 올려 잡아 문헌사학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학계에선 국가의 성립을 율령제도가 확립된 시기로 봤으며 삼국의 형성을 4∼6세기로 보아왔다. 이병훈 박사는 좀더 올려 삼국이 대립,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1∼4세기로 잡고 있다.
다음으로 제기된 문제는 『삼국사기』의 삼국초기 국가형성기 기록의 신빙성 문제. 기원전 1세기에 삼국이 형성됐다는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김정학 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는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는 문제가 있다며 중국의 사서인 『사기』 『한서』 『삼국지』 『당서』 등의 인용부분을 제외하곤 출처가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원룡 교수(서울대)는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편찬 당시 근거 없는 내용이 들어갔을 리 없으므로 이를 믿고 밝히는 고고학적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몽룡 교수(서울대)는 『사기』등에 나타난 국가단계의 기록을 비교하면 『삼국사기』의 초기기록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삼국의 형성 연대에 대해선 대체로 올려 잡았다.
이는 최근 고고학의 성과에 기초하고 있다.
한병삼씨(국립중앙박물관)는 신라의 경우 1세기초에 일어난 철기문화로 국가성립의 기틀이 다져졌다고 보고 3세기말∼4세기초로 추정되는 경주 구정동 고분은 당시 강력한 지배체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원전 1세기의 문화적 격동기에 박혁거세의 출현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으로 보았다.
김기웅씨 (문화재전문위원)는 최근의 고구려고분 발굴기록을 분석, 기원 전 l세기에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서 건국 연대는 『삼국사기』보다 올려야한다고 주장하고, 백제의 경우는 현재로선 3세기 이상으로 올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정학 교수는 고구려의 건국시기는 1∼2세기 백제는 3세기중엽∼4세기 초, 신라는 4세기 전반으로 잡았다.
이날 논의는 다양한 견해들이 속출,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는데 이런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답보상태의 고대사연구에 신선한 돌파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고고학연구회가 주관하는 내년 역사학대화의 주제는 「국가의 기원」으로 설정돼 있어 이번 고고학대회의 논의는 국사뿐 아니라 동·서양사의 관점까지도 가세, 더욱 다양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춘천=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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