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자 발생 6일 만에야 첫 대면보고 받은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방역망 곳곳에서 뻥뻥 구멍이 뚫리고 있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정보 공유, 병원 감염 관리, 의심환자 추적·격리 등에서 여전히 허점 투성이다. 특히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은 76번 환자는 당국의 관리망을 벗어나 서울의 한 요양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 건국대병원을 거쳤다. 삼성서울병원은 이 환자가 수퍼보균자인 14번 환자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정밀하게 추적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질병관리본부와 병원, 병원과 병원 간에도 메르스 격리대상자에 대한 정보 공유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76번 환자가 거쳤던 강동경희대병원은 메르스 의심환자가 다녀간 뒤 응급실과 별도의 격리진료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의심환자에 대해선 바깥에 별도의 진료실을 만들어 대비했어야 하는데 뒷북을 쳤다.

 정부는 7일 메르스 관련 병원 24곳을 처음 공개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를 틀어쥐면서 신속한 공유를 하지 않고 있다. 확진 판정을 받은 76번 환자가 병원 3곳을 경유한 사실은 이날 오후 방송에 보도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메르스 발생 상황이나 관련 병원 명단을 다음날 새벽에야 ‘뒷북’ 발표하고 있다. 의료계와 국민은 그만큼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전북 순창군에도 3차 감염자가 나왔다.순창의 70대 할머니 에 접촉한 50대 남성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자체는 격리대상자에게 담당자를 일대일로 붙여 관리하겠다고 했다. 일부 대상자가 여행을 떠나는 어이없는 일도 생기고 있다. 지난 6일 대전 거주 50대 여성은 강원도 강릉에서 300여 명의 승객이 탄 여객선으로 울릉도에 들어갔다. 메르스 확진 환자를 진료한 한 의사는 부인과 함께 6일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다음날 귀국하기도 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합동 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환자들이 처방받았을 인근 약국은 메르스 방역에 무방비로 놓여 있다. 약사도 환자 개개인을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메르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하기 전까지 약국은 메르스 의심환자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방역에 구멍이 있었던 것을 시인했다. 문 장관은 환자 발생 6일 후에야 대통령에게 첫 대면보고를 했다고 한다. 주무장관이 이러니 현장에서 뒷북대응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사태가 터진 뒤 리더십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일 국무회의도, 어제 긴급대응회의도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에게 맡겼다. 사태가 이쯤 됐으면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해 방역 컨트롤타워 구성, 병원 공개 등을 지시했어야 한다. 이미 상황이 심각해졌는데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지금 대통령의 역할은 각 부처의 의견을 모으고 직접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우리나라 메르스 환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가 됐다. 이제라도 방역망의 구멍을 메워 지역 전파를 막지 못하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