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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의 얼굴」을 가진 모리나가 제과 협박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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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괴인 21면상」. 21개의 얼굴을 가진 괴인이란 뜻이다.
지금 일본에서 청산소다를 넣은 독극물 과자를 무기로 죄 없는 시민을 협박하고 경찰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범죄집단 이름이다.
지난 9월12일 오오사까(대판)에 있는 일본 유수의 제과회사 모리나가(삼영) 관서지방 판매본부에 『1억엔(약3억5천 만원)을 내지 않으면 구리코와 같은 꼴이 될 것』이라는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구리코란 모리나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과자메이커.
구리코사는 금년 3월18일 사장 「에사끼」(강기승구·43)씨가 자택에서 목욕 중 벌거벗은 채 유괴됐다가 탈출한 것을 비롯, 회사 내 연속방화·제품에 청산소다를 넣겠다는 협박·3억엔 탈취미수 등 3개월 여를 정체불명의 범죄집단에 시달렸다. 이때의 협박장에도「괴인 21면상」이란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 사건으로 회사는 매상고가 반감되는 등 큰 타격을 입었으나 범인들은 어찌된 셈인지 6월 26일 스스로 「사건종결선언」을 하고 구리코에서 손을 뗐다.
9월12일 모리나가 관서판매본부에 날아든 협박장은 공포의 「괴인 21면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첫 신호였다.
범인들은 9월18일 오오사까의 한 레스토랑에서 현금을 인도하라고 지정해 왔지만 모리나가 사원을 가장한 형사의 정체가 드러나 체포에 실패했다.
체포에 실패한 1주일 후인 9월 25일에는 수사당국에 대한 도전장을 각 언론기관에 보내 『몇 번이고 얼굴을 대하는데 왜 못 잡느냐』고 비웃고 「오오사까부경」을 「오오사까부경」이라고 불러 모욕을 주고있다.
10월7일과 8일에는 오오사까 효오고(병고)·교오또(경도)등 관서지방의 12개 슈퍼마킷에서 13개의 청산소다를 넣은 과자가 발견됐다.
과자에는 『독이 들었다. 위험,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쪽지가 붙어 있어 희생자는 생기지 않았다.
10월 8일 각 언론기관에 보낸 협박장에는 하까따(박다)에서 동경까지의 지역상점에 경고쪽지를 붙인 독극물과자 20개를 놓았으며 10일 후 즉 18일에는 경고쪽지 없이 30개를 뿌리겠다고 예고했다.
범인의 협박이 에스컬레이트되고 독극물과자가 계속 발견됨에 따라 슈퍼마킷·백화점·일반상점에서는 속속 모리나가 제품을 치우기 시작, 회사측에 치명적인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모리나가는 이에 따라 11일부터 50% 감산체제에 들어갔으며 11월1일부터는 90%를 감산, 사건전의 10%수준으로 명맥만 유지하게 됐다.
10월 들어 15일까지 35억엔 수준으로 떨어진 매상고(전년동기대비 70%수준)가 하순에는 더욱 부진, 10월 한달 매상이 40억엔 수준을 넘지 못할 전망이다.
회사는 일부 부서의 통폐합 등 비상조치를 검토중이다.
주목을 끄는 것은 이 같은 상황에서 표적이 된 회사를 비롯, 일본사회의 범죄에 대한 대응자세다.
모리나가는 이번 사건이 창업(1910년) 이래 처음 맞는 회사존폐의 위기라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범인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 그 대신 살아남기 위한 피눈물나는 자구책을 강구하고있다.
전 사원은 물론, 그 가족까지 스스로 나서 슈퍼마켓·백화점·구멍가게를 돌며 독극물과자가 끼여들지 못하도록 감시하는가하면 회사는 안전한 과자를 공장에서 직송하는 직판점을 전국 15개소에 설치, 조금이라도 매상을 올려 위기를 넘기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일반 시민들도 「국민을 인질로 삼는」악랄한 범죄수법에 공분을 표시, 모리나가를 성원하는 한편 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15개 직판점에는 모리나가를 격려하는 시민들이 줄을 지어 찾아와 물건을 사주고있는데 그 중에는 과자를 살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끼여있다.
일손이 달리는 직판점에 무보수로 판매를 도와주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경찰이 공개한 협박전화목소리를 듣고 제보하는 전화가 수천 통이 걸려왔으며 비디오카메라에 잡힌 혐의자의 모습이 방영되자 4백 건에 가까운 시민의 제보가 들어왔다. 그 중 30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TV화면에는 거의 매일상점을 순시하는 경찰관과 모리나가 사원의 모습이 방영돼 범죄에 대한 시민·경찰·회사원의 일치된 저항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구리코사건이래 7개월이 지나도록 범인의 윤곽조차 못 잡고 있는 경찰에 대해 공격이 있을 법도 한데 매스컴이나 시민이나 비판보다는 격려와 협조를 보내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전문가들도 돈을 목적으로 한 범행인지, 과격파의 소행인지, 아니면 일본사회전체에 대한 원한에서 나온 특수집단의 범죄인지 의견이 엇갈리고있다.
범인들이 움직이는 것이 주로 주말이기 때문에 일본경찰은 매주 말 4만 명의 병력을 동원, 슈퍼마킷 등에 대한 감시망을 펴고있으나 아직 꼬리를 못 잡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사회방어체제에 허를 찔린 것이라고 지적, 범죄에 대한 사회방어란 개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구리코, 모리나가 사건은 해결이 된다해도 제과업계나 경찰의 명예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길 것 같다.【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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