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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보건소가 ‘방역의 최전선’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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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혁진
장혁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6일 오전 한산한 모습의 영등포구 보건소 1층. 메르스 상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장혁진 기자]
장혁진
사회부문 기자

“주민들이 (보건소 직원에게) 앰뷸런스 몰고 오지 말고, 흰옷도 입지 말라고 해요.”

 지난 6일 진미애 서울 강남구 생활건강팀장은 주민들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강남구는 의심환자 신고가 접수되면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환자의 자택으로 가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이 경우 “의심환자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꺼리는 주민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방호복은커녕 개인 승용차를 타고 검체를 채취하러 나간다고 한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 환자(14번)에게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료진 대부분이 강남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동원 가능한 인력이 100여 명 수준인 강남구 보건소가 감당하기 힘들다. 이에 부동산과·민원여권과 등 보건업무와 무관한 구청 직원들까지 일대일 모니터링에 총동원되고 있다. 서명옥 강남구 보건소장은 “확진환자가 자택에 격리된 상황에서 시설병상을 서울시에 두 차례나 요구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며 “구체적 지원도 없이 모니터링 결과만 빨리 올리라고 하니 우리로선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같은 날 영등포 보건소는 평온한 분위기였다. 건물 1층 로비는 안내 직원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메르스 상담실’을 알리는 표지문 하나가 전부였다. 상담실엔 직원 한 명만 한가롭게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1시쯤 마스크를 쓴 젊은 부부가 보건소를 찾았지만 “오늘 보건소 안 해요”란 구청 직원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서울시는 “25개 전 보건소에 메르스 진료실을 별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현장에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서울시는 보건소가 ‘방역의 최전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가택격리자를 일대일로 관리하기 위해 기간제(계약직) 보건소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강남권 외의 보건소에선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한 선제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보건소의 질병 관리 역할에 대해 등한시해 온 게 사실이다. 성공적인 방역의 세 가지 조건은 경험·권한·인력이다. 박재현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복지 예산은 늘어도 보건 관련 예산은 매년 제자리”라고 지적했다.

 ‘보건소는 최일선에서 질병 예방과 감염병 방역에 앞장서는 공공 의료기관’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또 보건소에 대한 예산·인력 지원을 확대하고 경찰이나 소방서에 버금가는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계적 대책 없이 ‘일대일로 감염을 막으라’는 지침만 내려보내는 건 공문 서류철의 두께만 더할 뿐이다.

장혁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