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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기성 시인이건 무명의 작가이건 간에 시조를 쓴다는 일은 창조적 행위에 속한다. 그리고 한편의 작품은 많은 괴로움과 아픔을 겪고 어려움을 거쳐 이루어진다. 마치 산고없는 출산이 없듯이 작품도 진통을 겪을 만큼 겪어야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편의 작품을 이루게 되었을 때, 그 기쁨과 후련함이란 이루말할수 없는 즐거움이며 작가만이 맛볼수 있는 희열이요, 행복감일 것이다.
아무런 아픔도 겪지않고 아품도 없이 씌어진 글은 자기 충족감이나 즐거움도 없을뿐 아니라 감동적인 전달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범작 내지 태작이 되고만다. 하여, 창작생활에는 늘 성실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심서』는 한 여인의 사무치는 외로움과 애절한 그리움이 아프게 새겨진 작품이다. 이토록 가신 님도 잊지 못하며 비록 멀리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두고 상거해 있으면서도 가슴으로 간직하며 피멍까지 들면서도 같이하는 아픔은 한국 여인의 사람이요, 부덕일 것이다. 그 절절한 사랑과 부군에의 향심과 회억이 어쩌면 작자의 여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청소부』는 한 서민(청소부)의 생활과 정황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이다. 추운 새벽, 아직 어둠이 가시기전 잠에서 빠져 나와 주황색 재킷을 입고 새벽(아침)길을 틔어 주는 그들의 노고와 보람은 값진 것이 아닐수 없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킨 시조로 공감을 사고 있다.
『자화상』은 하루를 열어가는 주부의 내적 상황을 그려보려는 작품이다. 그런대로 소박한 표현을 얻고 있으며 『추동산』은 착상이 기발한 작품이다. 작자가 학생이란 점을 감안하여 두수를 제외시켰지만 그 감성이 뛰어나다. 표현상 미숙성만 해소된다면 좋은 시조를 쓸수 있을 것 같다.『창문을 바르며』도 무난한 작품이라 하겠다.<김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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