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믿음] 영혼이 영혼을 움직인다

중앙일보

입력

시와 예언은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장르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둘은 흡사하며 거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학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종교를 가졌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예언의 느낌을 이해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언어를 통해 인간과 소통하시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시와 예언은 아마도 뿌리가 같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극히 오래 전 인간은 종교적인 감흥을 말로 표현하려 할 때, 그것을 노래로 표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래가 곧 시 문학으로 발전했으리라.

시와 예언의 공통점은 둘 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이다. 우러나오되 자의적이지 않은 즉흥적인 방식으로 우러난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낭만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강한 감정의 즉흥적인 우러남이라고. 예언도 마찬가지다. 의도하지 않은 말이 즉흥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예언의 방식이다. 다만 강한 감정이 아닌 강한 영혼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유능한 문필가들이 창작하는 방법을 들어보면 선지자가 예언을 하는 것과 흡사한 면이 많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쓰기 시작하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흥미롭고 기이한 생각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시와 예언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이다. 훌륭한 문학 작품일수록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만든다. 독자들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문학이 대신 해 주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언도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며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읽었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거짓말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는 이유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부한 말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답을 말했다 하더라도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듣는 이의 공감을 불러내지 못한다. 영혼만이 영혼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영혼을 소유한 존재라는 것을 확신한다.

시와 예언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문학은 비유와 상징 등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달리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언어 자체가 문학은 아니지만, 언어가 담고 있는 것이 문학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예언도 원래는 사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가지론적이거나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언은 직설적이지 않은 문학적인 방법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의도한 효과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많이 배운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가능하다.

시와 예언은 인간의 원시적 언어에서 유래되었으리라고 볼 수 있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인간은 노래를 통해 심오한 사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장구한 세월 동안 보존·전승되었다. 그 기억이 다 남아 있지 않아서 실감하지 못 할 뿐이지, 인류의 원시적 언어를 발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인류가 알고 있었던 신앙적 진리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영준 목사 pastortedkim@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