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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와의 전쟁 … 장수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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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4주 정도 열심히 관찰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나라처럼 잘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지난달 21일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내 질병 관리 총괄책임자로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책을 발표하는 첫 브리핑 자리에서다.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양 본부장은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하며 대규모 전파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말은 힘을 잃고 있다. 2차 감염 환자는 당초 설정한 격리 인원 밖에서 쏟아져 나왔다. 밀접 접촉 의료진과 환자 가족, 같은 병실 환자 정도로 전파 범위를 안일하게 잡은 게 문제였다. 결국 질병관리본부에 있던 메르스대책본부는 보건복지부로 넘어갔다. 양 본부장은 대책본부장 자리에서 내려왔고, 브리핑 담당자도 변경됐다. 그는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다른 병실 감염은)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환자가) 보건 당국 관리 시스템 내에 들어오지 못해 발생한 문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는 변명만 남겼다.

 메르스 확산이 이어지자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첫 사망자와 3차 감염 환자가 함께 확인된 지난 2일 “저희가 수동적으로 대처해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양 본부장은 다른 당국자들 사이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처럼 메르스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칼을 들고 앞장서는 장수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메르스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할 질병관리본부의 트위터 계정(@KoreaCDC)은 4일 현재 잠금상태다. 불통 사례는 또 있다. 환자가 발생한 병원과 지역명을 공개하라는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오해’와 ‘혼란’만 내세우며 의견 수렴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유전자 검사상황, 감염 의심자 등 기자들이 요청하는 기초자료에도 ‘비밀주의’를 고수하다 3일 갑자기 세부적인 통계까지 배포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고 밝힌 날이다. 부처 간 엇박자도 터져 나왔다. 황우여 사회부총리가 예방 차원의 휴교를 발표하는 동안 복지부에선 “휴교는 의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밝혔다. 첫 번째 사망자의 나이를 하루 만에 한 살 낮추거나 사망 추정시간을 2시간이나 잘못 공지하는 등 기초적인 실수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뒤늦게 만든 민관합동대책반도 삐거덕거린다. 질병관리본부가 초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지역사회 전파 방지 같은 장기적 대책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 시선도 싸늘하다.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처음부터 의료계와 긴밀히 협력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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