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2년째 ‘2분기 악재’ … “적극적 재정정책 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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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예약 취소가 속출하고 국내 여행객도 눈에 띄게 줄었다. 또한 초·중·고교생들의 수학여행까지 취소·연기가 잇따라 관광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운행을 하지 않는 관광버스들이 4일 서울 잠실 탄천주차장에 줄지어 서 있다. [신인섭 기자]

한국 경제가 ‘2분기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1%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기대감이 커졌지만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회복세가 꺾였다. 올해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수출도 부진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 2분기에 1%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낙관하긴 어렵게 됐다. 중화권 여행객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국내 수학여행 등 단체관광도 취소됐다. 자칫하면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겪었던 급격한 소비 위축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수출 부진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 침체까지 겹치면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발생한 나라들은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 그해 중국의 1분기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10.3%였지만 사스가 일어난 2분기엔 7.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홍콩의 성장률은 4.1%에서 -0.9%로, 싱가포르는 2.9%에서 -2.4%로 급감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사스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면서 그해 아시아의 경제성장률을 0.6%포인트 끌어내렸다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위기의식을 갖고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다른 국가에서 전염병이 일어났을 때는 3~6개월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은 엔저와 수출 부진 등으로 기본 여건이 좋지 않다”며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예비비 신속 집행 등의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도 “수출과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소비까지 문제가 된다면 정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와 제조업 기술 개발 등에 적극 투자를 하고 한국은행도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적인 체질 개선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지금 닥친 위기는 구조적인 문제에 돌발 악재가 더해진 것뿐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4일 “미국·일본·독일처럼 제조업 르네상스를 일으킬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기업이 새로 투자를 하면 현금 지원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자동차 산업에 투자액의 40~50%에 달하는 지원을 한다. 일본 도요타는 최근 미국 켄터키주에 3억6000만 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해 생산시설을 지을 때 1억4500만 달러(약 1610억원)의 현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받았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U턴 기업을 지원하고 제조업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과감한 맞춤형 지원책을 통해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도 필요하다. 일본은 개별 기업이 정부에 ‘규제 특례’를 요청하면 정부가 이를 검토해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규제가 많은 곳에선 성장을 주도할 신산업이 자라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도 원가 경쟁력에서 품질 경쟁력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원샷법 등을 조속히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던 경제 관련 부처들도 4일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첫 번째 관계부처 합동 점검회의를 열었다. 부처별로 살펴보던 것에서 벗어나 관계부처 합동 상황점검반이 소비·서비스업·지역경제·대외 부문 등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세종=김원배 기자, 김준술·조현숙 기자 oneby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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