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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석모<한국경제연구실부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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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금년 하반기부터 경기둔화 추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그 정도는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대로 가만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현재의 경기진단과 처방에 대해 경제계·학계·정부의 의견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요즈음 경기는 급속히 냉각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기선행지표는 8월이후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경기동행지표도 9월에 하락하기시작했다. 민간소비동향을 나타내는 서울도·소매액을 보더라도 1∼6월에는 전년동월대비 월평균 10.7%씩증가하던 것이 7∼9월에는 그증가율이 5.5%로서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한편 전경련조사에 따르면 기업설비투자는 1∼9월까지 당초 계획의 52%라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지표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경기가 하강국면에들어선 것은 틀림없으며 이대로 계속된다면 금년 하반기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정부측에서는「안정적 호황」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긴축기조를 늦추지 않겠다는 방침을 굳히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경기하락을 정책적으로 더욱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경기하강은 자생적인것이 아니라 정책유발적 (policy-induced) 이라는데에 그 특징이 있다. 하반기의 경기하강은 해외시강조건의악화에 따른 수출부진에도 그원인이 있으나 정부의 강력한 긴축정책은 내수시장까지도 위축시키고 이것은 내외시장의 불투명,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가져옴으로써 기업의투자의욕을 꺾어놓았다.
당초 기업은 올해 경기를매우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왕성한 투자계획을 세웠다. 제조업의 설비투자는 지난해에 비하여 45%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왕성한 투자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지나친 금융긴축에 주원인이 있다도본다.
1∼6월 사이에 월평균 12∼13%씩 증가하던 통화량이 7∼9월 사이에는 그 증가율이 通貨 (M1)의 경우는6.5%, 총통화 (M2)의 경우는 8.2%로 크게 떨어졌다.
물가상승을 감안한다면 통화량의 실질증가율은 최근 3개월동안 4∼6%에 불과하다. 정부당국의 방침대로 긴축기조를 이대로 지속한다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4∼6%를 넘지못할 것이라는 것이 통화론자의 공식에 의한예측결과다.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서면 금융긴축을 완화하고 투자촉진책을 쓰는 것이 경기정책의 원리다. 하강국면에서의 긴축정책은 원리에 어긋나는 정책선택이다.
경기대책의 원리에 어긋나는줄 알면서도 경기부양책을 쓰지 못하는 데에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국제수지 문제다. 8월까지의 경상수지적자는 15억달러로서 전년동기간의 12억달러를크게 초과하고 있다. 금년의당초 계획인 10억달러 적자폭을 이미 넘어섰다.
국제수지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수입수요를 줄이기 위하여 정부당국은 경기후퇴 가운데서의 긴축정책이란 상충된 정책선택을 하고있는 것이다. 총수요관리와 통화정책의 초점을 국제수지에 두는데에 정책선택의 문제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국제수지문제를 통화정책과 총수요관리로서 다루려는데에 문제가 있다.
금융긴축과 총수요억제는 자본재와 원자재수입의 감소를 가져와 단기적으로는 무역수지를 개선시키는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긴축에 따른 설비투자의 감소는 수출산업의생산력과 국제경쟁력의 향상을 저해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수출증대를 저해한다는 사실을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경제의 국제수지적자는 일시적이고 경기순환적이 아니라 만성적이고 구조적이다. 투자에 비한 국내저축의 부족, 수입의존적인 소비형태와 산업구조가 국제수지의 만성적 적자를 유발하는 근본원인이다. 이러한 만성적·구조적원인을 치유하지않고 총수요억제를 위한 가장 손쉬운 금융긴축을 구사하는 것은 정책수단의 선택에 있어 문제를야기시킨다. 이러한 정책선택에 따르면 국제수지개선은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감퇴라는 희생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4백억달러의 외채를 안고있는 우리경제가 GNP의 10%에 해당하는 원리금상환(이자만해도 GNP의 거의 5%수준)을 위해서는 높은 경제성장이 지속되어야한다. 경제성장만이 부채상환 능력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높은 율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국제수지개선을 이룩할수있는 정책선택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최근의 경기후퇴는 우리경제가 안고 있는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범폐를 일시적으로 치유하기 위하여 사용된 정책수단의 부산물이라 할수 있다. 총수요관리와 통화정책은 만병통치의 약이 될수 없다.
자유중국의 예를 보자. 총통화증가율은 9월까지22%로서 우리나라의 3배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도매물가상승률은 1.2%로서 우리나라4.3%의 3분의1도 안되는 수준이다. 한편 국민저축률은 1983년에 31.5%로서 우리나라의 24.8%보다 훨씬 높다. 자유중국의 금년도 무역수지는 8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유중국의 경우는 충분한양의 통화와 금융의 공급이 소비증가와 인플레를 유발하지않고 생산활동 부문으로 흘러들어가 수출을 늘리고 이에 따른 경제성장의 과실은저축으로 축적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자유중국의 올상반기 경제성장은 12%의 높은율을 기록하고 있다. 똑같이악화된 해외수출시장의 여건에서도 수출신장을주도로하여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경제운용의 묘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
총수요관리와 통화긴축에만 안주하기에는 우리경제의 구조적 병폐는 너무 심각하다. 불건전한 소비풍조를 바로잡고 저축을 늘리는데 전력해야 한다. 수입 의존적인 소비형태를 바로잡아 저축을 늘리는 것만이 외채를 갚고 국제수지를 개선하는 길임을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이에 필요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한다.
경제성장의 주축은 기업의유효투자다. 기업의 투자의욕을 진작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나친 긴축이 이를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금융긴축은 억제해야 마땅한 소비를 줄이기에 앞서 조장해야할 투자를 감퇴시킨다. 이제는 과거 인플레시대와는 달리 기업의 투자결정은 매우 선별적이다. 높은 실질금리부담아래에서는 투자수익률을 고려하지 않을수없다. 그리고 투자기회는 첨단산업·하이테크산업에 집중되어있고 이러한 투자능력은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투자기회및투자능력에 있어 산업간격차, 기업간격차가 매우 큰것이 최근의 특색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적정량의 경제자원이 소망스런 부문에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하는 정책의 선택과 운용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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